[샛강에서] 마음의 호신술

입력 2025-02-20 00:32

걸그룹 아이브 소속 장원영이 한 예능에서 추천한 책 ‘초역 부처의 말’ 판매량이 심상치 않다. 방송 이후 점점 상승세를 탄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저작을 제치고 현재 주요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럭키 비키’(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에 행운을 뜻하는 ‘럭키’를 조합한 신조어)로 유명한 그의 초긍정 사고방식이 10대를 넘어 청장년층에도 큰 울림을 준다는 방증이다. 세대 불문하고 자기 생각과 마음을 돌보는 ‘마음 관리’에 진심인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잖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의 기저엔 ‘신체처럼 마음도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병들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마음이 병들 때 흔히 생기는 질병이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 우울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22년 현재 100만32명이다. 우울증 병력이 없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병원 진단은 없어도 우울감을 보이는 이들이 꽤 돼서다. 지난해 4월 임상우울증학회(회장 김영식)가 성인 1064명을 대상으로 한 ‘우울증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를 받지 않은 성인 3명 중 2명(64.9%)이 우울감을 호소했다.

문제는 마음 관리의 부재로 얻는 이 병이 자살 고위험 인자라는 것이다. ‘자살의 주요 원인은 당사자의 자기 수양 부족으로 얻은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자기 의도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을 때 주변 목소리에 휘둘려 극한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관리할 필요는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는 세상에서 생각과 마음을 긍정적 방향으로 관리하는 건 ‘마음의 호신술’을 연마하는 것과 같다.

미국 MZ세대 기독교인에게 큰 호응을 얻은 작가이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종교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고(故) 레이첼 헬드 에반스에겐 나름의 마음 관리법이 있었다. 최근 국내 출간된 ‘온 마음 다하여’(바람이불어오는곳)에 수록된 방법인데 일명 ‘협박 메일(악성 댓글) 종이접기’다.

에반스는 평소 여러 연단에서 “성경과 복음주의 전통에 수시로 의문을 제기하는 신앙이 건강하다”고 강조해 왔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많은 질문을 능히 다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고백이었지만 일부 복음주의자는 그를 구약성경 속 악녀인 ‘이세벨’로 칭하며 악평했다. 복음주의 관점에서 벗어난 의견이나 행위는 아무리 약자를 품는 행동이라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게 이들 입장이었다.

같은 기독교인에게 ‘교회의 수치’ ‘비명횡사나 해라’ 등 원색적 비난을 받던 그는 마음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마음 정화 작업에 돌입한다. 협박 메일을 인쇄한 종이로 꽃이나 동물, 사물을 접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활동이다. 언어의 쓰레기를 아름다운 물체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에반스가 눈물을 흘리며 종이를 접는 과정을 온라인으로 공개하자 한 악플러가 사과 메일을 보내온다. 이때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은 함께 상처받는 존재인 동시에 함께 용서하는 존재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너머에 쉽게 상처받고 흐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 때 우리는 서로를 더 너른 마음씨로 대할 수 있다.

마음을 관리해야 하는 게 어디 작가나 방송인뿐이랴. 에반스처럼 우리 각자도 나만의 마음 관리법을 찾는 게 절실하다. 마음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는 데 힘쓰자.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전무하는 일 역시 마음 호신술을 단련하는 좋은 방법이리라.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