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 규제, 기술발전 반영해야

입력 2025-02-20 00:32

원자력 안전 규제는 국민을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로부터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규제자의 의사결정은 엄정하고 확고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강력한 규제가 최선일까. 지나친 규제는 방사선 의료 진단을 어렵게 하고, 원자력 활용을 막아 화석연료 사용 증가와 기후변화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마치 자동차 사고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적 위험 분석을 기반으로 한 리스크정보활용 규제(Risk-Informed Regulation)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 원칙을 적용해 규제를 시행하며, 지난해 제정된 클린에너지를 위한 선진원자력촉진법(ADVANCE Act)에서도 이를 강화했다. 이 법은 국민 보호뿐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 완화를 목표로 하며, 위험이 없는 곳에는 규제를 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쉽지만 완화하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규제 체계가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이 있다. 1986년 설정된 원자력 안전 목표는 원자력 시설의 위험을 사회 전체 인공적 위험의 0.1%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었고, 이후에도 과학에 입각한 규제 정책을 유지해 왔다. 인허가 과정에서 열리는 주민 공청회도 규제기관이 주관해 비과학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시스템에 반영하며 규제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치권도 과학을 거스르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더 합리적인 규제 시스템을 만들도록 합의하고 강력히 요구해 왔다. 규제기관은 더 진화하고, 과학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시스템을 쌓아올렸다. 국민들이 규제기관을 신뢰하는 밑바탕에는 이렇게 과학을 기초로 하는 튼튼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엄격한 규제 속에 가장 합리적인 규제를 수행한다는 명성을 얻게 된 배후에는 이러한 축적된 기술과 노력이 존재한다. 이처럼 과학적이고 투명한 규제 시스템이 있기에 새로운 기술을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다.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이 쌓여가며 규제 시스템의 신뢰도와 경쟁력이 높아진다. 반면 이런 시스템이 없는 사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규정에 의존하게 된다. 수십년 전 증기기관차를 기준으로 만든 규정을 최신 자동차에 적용할 수 없듯이, 기술 진보를 반영하지 않는 규제는 발전을 저해한다.

우리의 원자력 규제는 미국을 모델로 출발했지만, 일부 규정은 여전히 1960년대 미국의 과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민 공청회를 사업자가 주관하면서 비과학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현실도 문제다. 원자력 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기술 진보를 반영한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학에 기초하지 않는 안전 규제는 아집이며, 허상을 좇는 것에 불과하다.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RP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