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우방도 없는 관세 전쟁… 전 세계 강타

입력 2025-02-18 19:03 수정 2025-02-18 23:56
미국 ‘대통령의 날’인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연방정부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 시위자가 든 피켓의 트럼프와 머스크 합성 사진에는 ‘닥터 이블과 미니미’라고 적혀 있다. 이날 시위는 워싱턴DC뿐 아니라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2기 취임 한 달을 맞는다. 취임 전부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한 강력한 국내외 정책으로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폭격은 자유무역 경제질서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미국의 가자지구 장악’ 발언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러시아와의 전격적 종전 협상에서 보듯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황금기’를 내건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각국 정부는 모두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17일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가 지난달 20일 취임 이후 서명한 행정명령과 각서, 포고문 등은 100건을 넘어선다. 미국과 세계를 뒤흔드는 정책들이 트럼프의 서명 하나로 의회를 우회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취임 한 달을 앞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트럼프 효과는 둔화되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첫 달 동안 국경 보안 강화, 규제 완화, 정부 책임 강화,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등 새로운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기 위한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효과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선포한 ‘관세전쟁’에 전 세계가 예외 없이 영향권에 들었다. 보편관세, 국가별 관세, 품목별 관세, 상호관세를 연쇄적으로 발표하며 전선을 넓히고 있다. 동맹과 우방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는 지난 1일 불법 이민과 마약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멕시코와 캐나다산 상품에 25% 관세 부과를 선포한 뒤 한 달 유예기간을 두고 두 나라와 협상 중이다. 펜타닐 원료 공급처로 지목된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강행했고 중국도 보복 조치를 개시하면서 미·중 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됐다.

트럼프는 또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다음 달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지만 캐나다와 유럽연합(EU), 한국 등 동맹국까지 사정권에 들어갔다. 4월 2일에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예고했다.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전선을 더욱 넓혔다. 관세뿐 아니라 각국의 조세 제도, 환경 규제와 같은 ‘비관세 장벽’도 문제 삼으며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국의 오랜 시스템도 흔들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특히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VAT)를 관세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도 빨간불이 켜졌다. 트럼프는 “우리는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VAT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라들을 (대미) 관세를 가진 나라와 비슷하게 여길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이 전 세계 무역시장을 교란시키고 결국 미국 물가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관세 정책을 발표한 뒤 발효 시점을 유예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 방식에 각국 정부는 혼돈에 빠진 모습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범죄라기보다는 실수"라며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전방위적 고율관세를 부과하려 한다면 이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맹도 거래 대상으로 보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에 세계 안보 지형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EU)을 배제했다. 합심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를 고립시켰던 서방 자유 진영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최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도 미국과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역할과 방위비 분담,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커다란 인식 차를 드러냈다. 유럽이 '패싱'당할 위기에 처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유럽 정상들과 파리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트럼프는 미국 영토를 더 확장하겠다는 '팽창주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중동의 화약고인 가자지구를 장악한 뒤 개발하겠다는 트럼프의 발표는 아랍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직후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이자 이웃인 캐나다를 향해선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또 파나마운하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겠다면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파나마로 보내 압박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세계보건기구(WHO)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며 세계질서를 규정하는 다자기구와의 협약도 무시했다.

각국 정상은 트럼프에게 읍소와 반발로 대응하고 있다. 관세 폭격을 가장 먼저 맞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관세 발효를 하루 앞두고 국경 단속 강화를 약속하며 한 달 유예를 얻어냈다.

아시아에선 중국이 트럼프의 10% 추가 관세에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반면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7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극찬하며 대미 투자 확대 등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자국 내에서도 '충격과 공포' 전략으로 연방정부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이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중이다.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내준 민주당은 속수무책이다. 트럼프는 최근 트루스소셜에 "조국을 구하는 사람은 그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자신을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황제의 칙령처럼 쏟아지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멈출 수 있는 견제 세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