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의지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허망했다. 조문을 끝내고 대회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여러 생각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 없다는 것, 말을 해주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살아있을 때 뭐든 하기로 다짐했다. 나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하 목사님은 내 어깨가 무거울 때마다 “최 형제, 항상 낮은 곳에서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를 지키는 게 중요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치면 우승도 하는 게 골프다. 지금도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른 아침 미국 오하이오에 도착하자마자 경기에 들어갔다. 시합 내내 공을 치는 건지 꿈속에서 헤매는 건지 분간이 어려웠다. 동료 선수들이 하나둘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KJ,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매우 유감이야. 기운 없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네가 이렇게 힘없어 보이는 건 처음이네. 힘내라, KJ.” 결국 대회는 59위로 마쳤다.
몇 달 후 또다시 울컥한 일이 생겼다. 2011년 11월 11일 최경주재단 창립 4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에 윤복희 선생님을 초대 손님으로 초청했는데 그날 무대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골프를 잘 몰라요. 최경주 프로도 잘 모르고요. 내가 어떻게 여기 와있느냐고요. 하루는 하용조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 꼭 나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죠. 죄송하지만 해외공연 일정과 겹쳐서 안 되겠다고 했더니, 무리인 줄은 알지만 일정을 조정하면 안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30여년을 알고 지냈지만 그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신 건 처음이었어요.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정말 어렵게 일정을 조정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시간은 비워 뒀는데 만날 사람이 없어진 거죠. 때마침 최경주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야 깨달았어요. 하 목사님이 이 자리에 꼭 오고 싶어 하셨다는 걸요. 당신 대신에 나라도 와서 최 프로를 만나라고 하시는구나 하고요.”
하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3주 전쯤에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재단 후원의 밤에 윤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으니 주선해 주십사 부탁드린 적이 있다. 그게 마지막 전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윤 선생님이 ‘여러분’을 불러주셨는데 들으면서 울컥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목사님은 내게 끝까지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곁에 없어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목사님에게 배운 소중한 믿음의 유산이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