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오징어게임 사회

입력 2025-02-19 00:40

지난해 영화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다주)는 “45년의 커리어 가운데 절반가량 저를 구해내느라 애썼을 제 소속사 변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릴 적부터 배우의 자질을 보여줬지만 마약에 빠져 방황했고 1년 반가량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등 순탄치 않았던 삶을 재밌게 묘사했다. 명배우이자 감독으로도 성공한 브래들리 쿠퍼, 80년대 섹시 스타 미키 루크도 마약, 알코올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로다주와 쿠퍼는 마약·음주 파문 후 오히려 전성기를 맞았다. 한국이라면 가능할까. 한국 연예인은 음주운전, 폭행 등 사고 외에 일탈 의혹만 제기돼도 치명타를 입는다. 대중의 비난은 기본이고 무대나 광고 섭외 단절도 감수해야 한다. 재기도 불투명해진다. 연예인에 대한 잣대가 어느 나라보다 가혹한 편이다.

배우 김새론이 지난 16일 극단적 선택을 해 여론이 시끄럽다. 아역 시절부터 촉망받던 김새론은 3년 전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대중의 질타에 추락했고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음주운전은 큰 잘못이지만 재기의 기회도 없이 사람을 매장시키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사회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게임 같다”고 짚었다. 공교롭게도 나 교수는 2년 전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배우 유아인에게 “아이언맨(로다주)처럼 돌아와 달라”고 SNS에 적었다가 비판을 샀다. 연예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용에 혀를 내둘렀을 법하다. 한국 연예계는 ‘(평판에서의)탈락=죽음’이라는 오징어게임 사회의 압축판이다.

연예인만의 문제일까. 경기개발연구원은 2011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패자부활전 부재’의 사회구조가 자살률의 무서운 증가세 원인”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10여년이 지나도 자살률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동의 세계 1위다. SNS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조그마한 흠과 실수의 대가는 더욱 커진다. 단죄와 관용의 경계선과 범위를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