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나이스 샷!” 공이 바람을 가르고 파란 하늘로 솟구쳤다가 지면을 향해 급강하한다. 제주도의 한 파크골프장에 두 남자가 섰다. 30대에 교회에서 만나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두 노인은 이렇게 종종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내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애하는 친구 김 장로님이다. 두 분은 현재 제주도에서 여행 중이다. 몇 년 전 제주 한 달 살기를 함께했고 틈만 나면 등산을 가시더니 최근에는 파크골프에 입문하셨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김 장로님이 빠지지 않는다. 그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문득 생각한다. 신앙은 믿음의 고백으로만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우정을 통해서도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지금 제 나이 때 교회 생활은 어땠어요?” 제주에서 전화를 받은 아버지 곁에는 김 장로님이 계셨다. 전화기 너머로 일행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는 친구가 많았지.”
아버지의 말은 나를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주일이면 교회 집사님 가족과 등산을 가고 여러 가족이 어울려 나들이하러 다니던 시절. 남자 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도 하고 고기도 구웠다. 그리고 엄마들은 수다를 떨었고 아이들은 뛰어놀았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들은 교회 일을 논의하고 기도했다. 당시 아버지들은 으쌰으쌰하며 교회를 부흥시켰던 주역이 분명했다. 교회에서 형성된 우정은 서로의 믿음을 붙잡아 주는 강력한 지지망이었다. 그들은 봉사하고 예배드렸고 어울리며 서로의 신앙을 보살폈다.
문득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또래 남성 교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교회에 친구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총회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일예배 외에 다른 교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30~40대는 무려 65%에 달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나이스하게’ 떨어져 있다. 함께 예배는 드리지만, 관계는 얕고 조용하다. 마치 벌집 속 포켓 하나처럼 개별적인 신앙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우정을 위한 시간은 없다. 일과 가정이 1순위고 신앙 공동체는 저 멀리 밀려난다. 그리고 외로움은 신앙의 적이 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박보경 교수는 그의 논문 ‘우정과 동행의 선교’에서 ‘빌롱잉(Belonging, 소속됨)의 경험이 빌리빙(Believing, 믿음)보다 먼저 온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선교를 위해 하는 모든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걸어가는 관계’라는 지적이다. 신앙은 논리나 교리가 아니라 ‘공동체’라는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에게 김 장로님이 없었다면, 만약 30년 전 그의 교회 생활이 ‘고립된 신앙’이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을까.
지난 한 달간 10명의 교회 아재들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교회에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정이 후순위로 밀려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이 먼저지.” “가정이 먼저고.” “친구들은 저절로 사라졌어.”
우정은 신앙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스턴글로브 기자 빌리 베이커는 저서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에서 우정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며 중년 남성들이 의식적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가정사역을 하는 이의수 남성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은 “교회는 40대 남성들에게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개인화된 신앙을 유지하는 구조에서는 결국 중년 남성들이 교회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 아재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다시 서로를 찾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관계 말이다. 이대로라면 이 세대의 신앙은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