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던 충격적인 참극
정신질환 교원 직권 휴직키로
돌봄 인력 확충·CCTV설치해
다시 학교를 안전한 곳으로
교사·학부모 신뢰 회복 중요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어야
정신질환 교원 직권 휴직키로
돌봄 인력 확충·CCTV설치해
다시 학교를 안전한 곳으로
교사·학부모 신뢰 회복 중요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어야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우울증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했다가 한 달도 안 돼 돌연 복직했을 때 그의 정신건강 상태를 면밀히 확인했더라면. 학교에서 컴퓨터를 부수고 동료 교사의 목을 졸랐을 때 바로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사건 당일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즉각 조퇴시켰다면. 돌봄교실에서 나가는 아이를 학교 측에서 정문까지 데려다주었더라면. 하늘이는 지금도 밝게 웃으며 아빠와 좋아하는 축구를 보러 가고, 아이브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있었을 텐데. 가장 안전한 곳이라 믿었던 학교에서, 슈퍼맨처럼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교사에 의해 참극이 일어났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늘이는 고작 여덟 살이었다.
‘하늘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두 가지 과제를 남겼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그리고 돌봄교실의 허술한 안전 관리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먼저 교사 분리 문제. 지금은 교사가 의료기관의 진단서와 의사 소견서만 제출하면 휴·복직이 자유롭다. 복직한 교사에게 이상 증세가 보여 학교가 재휴직을 권고해도 “같은 병력으로 더는 휴직이 불가능하다”라는 납득되지 않는 규정이 가로막고 있다. 문제 교사를 걸러 낼 질환교원심의위원회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름뿐이었다. 거의 열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만든 법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제도는 시행되지 않았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교육부는 ‘하늘이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정신질환 등으로 교직 수행이 곤란한 교원을 직권 휴직시킬 수 있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 또 교원이 정서적으로 회복됐는지를 확인한 후 복직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개선한다. 꼭 필요한 일이고, 학부모는 물론 동료 교사들도 환영하는 일이다. 다만 복직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위원회에 학생 대표를 참여시킨다는 방안은 우려스럽다. 초등학생이 그만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교사 입장에선 심각한 인권침해일 수 있어서다. 현장 목소리를 귀담아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3년 사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초등 교직원은 2배가 늘었지만 학교가 파악할 방법은 없다. 미국이나 일본은 매년 교사의 정신건강을 조사하지만 한국은 교사가 안 밝히면 알 수가 없다. 실태 파악과 지원 등도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사회 전체적인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고 정신건강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돌봄 안전 문제다. 지난해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한 ‘늘봄학교’는 원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기에 맞벌이 가정에는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댈 언덕이었다. 올해는 2학년까지, 내년엔 전 학년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늘봄 전담인력은 학교당 평균 1.4명밖에 안 된다. 안전한 귀가를 위해서는 대면 인계, 보호자 동행 귀가가 원칙인데 교사 한 명으로는 불가능하다. 돌봄 인력을 확충하고, 교내 비상벨·CCTV도 설치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우리 사회가 저학년 학부모에 대한 유연근무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부모 간 신뢰다. 하늘이 아빠가 자녀 보호를 위해 사용했던 휴대전화 앱 다운로드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켜놓고 있으면 아이 주변의 소리가 다 들린다. 일종의 도청장치로 교사의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교사들은 차라리 앱을 사용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반응이다. 그래야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서글프고도 살벌한 현실이다. 핸드폰을 끄게 하는 것도 학생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어 강제할 수 없다. 이런 정도의 말도 못 하는데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공교육이 살아나려면 교사와 학부모의 믿음이 우선이다. 교실은 감시의 공간이 아니라 신뢰의 공간이어야 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학교는 다시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 학생이 교사를 무서워하지 않고 학부모도 불안하지 않았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게 먼저 간 하늘이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는 일일 것이다. “하늘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예쁜 별로 가렴.”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