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간 물가가 40% 오르는 동안 근로소득세 과세표준과 세율은 묶어 놓아 직장인들의 세 부담을 증가시킨 것은 불합리하다. 임금 인상과 호봉 승급으로 매년 급여가 증가하면서 세금도 늘어나는데 과세표준은 물가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아 직장인들만 ‘소리 없는 증세’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근로소득세 수입은 61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법인세 감면과 경기 침체 영향으로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모든 세목의 수입이 줄었지만, 근로소득세는 1년 만에 1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 바람에 국세에서 차지하는 근로소득세 비중이 역대 최대인 18.1%로 늘어 법인세 비중(18.6%)과 비슷해졌다. 10년 전만 해도 근로소득세 비중은 국세의 12.4%로 법인세(20.8%)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세수 펑크를 근로소득세로 메우는 지경이 됐다. 원천징수되는 근로소득세 성격상 조세저항이 적다는 걸 노려 정부가 손쉽게 직장인들의 유리 지갑만 턴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근로소득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과세표준 구간별 세율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근로소득세는 8개 과표 구간에 따라 6~45%의 세율을 적용한다. 1400만원 이하면 6%를, 10억원이 넘으면 4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과표 구간별 세율은 2~3% 포인트씩 늘어나는데 이른바 고소득으로 간주되는 8800만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 구간에서는 35%로 껑충 뛴다. 직전 구간(5000만~8800만원) 세율이 24%인데 비해 11% 포인트 오른다.
과거에는 연봉 1억원 이상이 고소득으로 간주될 만큼 드물었지만 이제는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하다. 2008년 연봉 1억원 이상 근로자는 19만5000명이 채 안 됐다. 이 숫자가 2023년에는 139만명으로 7배 이상 늘었다. 2008년 이후 물가가 40% 인상된 걸 감안하면 고소득 기준을 과거와 같은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불합리하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가구당 평균 소득세를 353만원(2022년 기준)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정부가 근로소득세를 시대 변화에 맞게 현실화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