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당신의 호수

입력 2025-02-19 00:35

이루마의 ‘너의 마음속엔 강이 흐른다(River flows in you)’를 듣는다. 2001년에 발매된 피아노 연주곡을 지금까지도 즐겨 듣는 이유는 내 인생론 형성의 시초가 됐기 때문이다. 이 곡에 심취했던 사춘기 시절, 마음을 강에 빗대어 그려보곤 했다. 기분 좋은 날엔 봄이 만발한 4월의 강을, 우울한 날엔 세찬 비가 내리치는 강을, 마냥 지쳐 숨고 싶은 날엔 짙푸른 밤의 강을 떠올렸다. 연주곡은 소녀의 마음이 들쑥날쑥해도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돼줬고, 운치를 곁들인 상상은 자연스레 습관이 됐다. 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며, 내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좁다란 강은 광활한 호수로 범위를 넓혔다.

가끔씩 오라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다. 어쩜 저렇게 사려 깊은 행동과 말로 상대를 배려하는지, 어쩜 저렇게 차분하게 얽힌 상황을 풀어가는지, 어쩜 저렇게 한 수 너머 그다음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는지. 흠모의 감정으로 그들 내면에 품은 호수를 상상한다. 아마도 삶의 풍파를 겪으며 내면의 강을 넓히고 깊게 파 내려갔을 것이다.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반성을 거듭했을까. 누군가의 말과 행동은 절로 얻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와 다층적인 사고가 깃들어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여러 변수를 고려하고, 상대를 헤아리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낮추기도 하고, 분쟁과 갈등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등 수많은 경험과 성찰의 시간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으리라.

사사로운 일에 쉽게 동요했던 날들을 보내며 스스로 물었다. 수심 깊은 물이 잔돌에 출렁이지 않듯 내면의 깊이에 따라 사건의 크기와 파장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호수와 같다. 모두가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전 생애에 걸쳐 호수를 가꾼다. 당신이 가꾼 호수가 참 깊고 아름답다. 먼 훗날, 나의 호수도 그러했으면.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