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에 반대하는 반(反) 성혁명 기조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 이는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 강화, PC주의(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염증, 복음주의 교계의 지지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변화된 모습은 한국 교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反 성혁명 기조 강화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성별·인종 등을 고려한 다양성 장려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 2건에 서명했다. 이 가운데 1건은 ‘젠더 이데올로기 극단주의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고 생물학적 진실을 연방정부에 회복함’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관적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2개 성별만 인정하는 게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의 생물학적 현실을 뿌리 뽑으려는 노력은 근본적으로 여성들을 공격하는 행위”라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 전용 시설을 이용하도록 허용해온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여러 조치가 이어졌다. 트럼프는 지난 5일 트랜스젠더 여성의 스포츠 경기 출전을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러한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서명 후에는 행정명령 서명에 사용한 펜을 나눠주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여성 경기 출전을 허용한 각급 학교에 모든 연방 지원을 금지한다는 게 이날 행정명령의 골자”라며 “여성 스포츠에 체력적으로 우수한 성전환자가 참여하는 건 여성에 대한 차별이자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19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성확정 의료지원 제한 등도 추진됐다. 특히 후자의 경우 미성년자의 성별 전환을 돕는 호르몬 요법 및 사춘기 예방약 등 의료 서비스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군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군인 건강보험 ‘트라이케어’와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제도인 ‘메디케이드’ 등 연방 차원에서 운영되는 건강 보험 체계에서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전환 치료 지원을 제외하는 것이다.
미국 내 반발 강도 낮아
트럼프의 반 성혁명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반발은 과거에 비해 크지 않다. 이용희 가천대 교수는 “오바마 이래로 미국에서 친 성혁명적인 PC주의가 확산돼 트럼프 1기 때는 반 성혁명 정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트럼프와 공화당이 공격적으로 해당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된 게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했고, 미국 의회의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목 하에 확산된 성혁명에 대한 미국인들의 염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미국에선 남·녀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고 수십개의 성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성혁명 기조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 동성애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책의 학교·공공도서관 비치를 금지하거나, 동성애·양성애 커플의 자유로운 입양 허용 등을 지원했다. 나아가 행정부 내 주요 직책인 장관이나 차관보 등에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임명하기도 했다.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는 1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무분별한 정책에 따른 피로감과 반작용으로 가족, 신앙, 소명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움직임이 다시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복음주의 교계가 단합돼 트럼프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지난 대선 때에도 트럼프 당선의 주역으로 평가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라이프웨이리서치가 지난달 13일부터 21일까지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밝힌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유수연 미국 캘리포니아주 ABC통합교육구 교육위원은 “청교도 신앙을 가진 이들이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미국이 너무 잘못 가고 있다는 인식을 폭넓게 공유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며 “이를 막는 수단으로 트럼프를 선택했고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다. 이것이 도덕과 성실,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교계 영향
트럼프 집권 후 미국의 모습은 한국 교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수화 경향성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안건상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성경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트럼프의 정책이 한국 교계의 윤리적 보수성 강화와 정책 요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사례를 교훈 삼아 반 성혁명 운동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의 사례는) 이쪽 진영에는 하나의 모범 사례”라며 “국내에서도 반 성혁명 운동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