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와 의료계 갈등 여파에도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따른 성과로 호실적을 내며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했지만 유한양행이 국내 제약사 최초로 연매출 2조원을 돌파했고, 보령이 ‘1조 클럽’에 가입한 의미 있는 해였다. 그러나 올해도 의정갈등이 지속되면 전문 의약품 비중이 높은 제약사 위주로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 고환율과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제약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해 국내 전통 제약사 중 최초로 연 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 신약인 렉라자(레이저티닙)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에 성공하면서 기술료 수입이 증가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연구개발(R&D) 비용 증가와 종속기업 이익 감소 등으로 전년보다 줄었다.
GC녹십자 역시 매출은 키웠지만 세포·유전자치료제 업체 지씨셀 등 자회사의 실적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6.8% 감소했다. 그룹은 최근 보툴리눔 톡신 개발 기업을 인수하며 수익성 강화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1년 넘게 이어졌던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도 제약사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냈다. 이상지질혈증 복합신약 로수젯(성분명 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 고혈압 치료 복합제 제품군 아모잘탄패밀리 등 독자 개발한 개량·복합신약이 성장을 이끌었다.
대웅제약도 지난해 매출 1조원을 훌쩍 넘겼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인 나보타가 미국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역류성식도염치료제 펙스클루가 출시 3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간장약 우루사는 올해 매출 1000억원 달성이 기대된다.
보령은 고혈압 신약 카나브 패밀리를 비롯한 만성질환 전문의약품의 성장을 통해 창사 이래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의 공동 영업·마케팅 실적도 주효했다. 종근당은 1조 클럽 제약사 중 유일하게 매출이 줄었고 영업이익도 60% 가까이 빠졌다. 2023년에 노바티스로부터 기술 수출에 따른 선입금을 수령한 것이 역기저효과를 유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업계에 한때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다만 의료비 부담 가중을 의식한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은 관세 적용 품목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필수 의약품에 관세가 적용되면 가격 상승을 촉발하기 때문에 의료시스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는 트럼프 정부가 지속해서 주장해 온 의약품 가격 인하와 상충하기에 가능성이 작다”고 예상했다.
업계에서는 환율과 정치 상황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 산업의 원료의약품 수입의존도가 높고 해외 임상시험도 이뤄지는 만큼 고환율이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의정 갈등으로 내수 시장이 악화된다는 점도 올해 실적에 마이너스 요소”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