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셈법에 휘말린 세법… 흔들리는 조세정책 신뢰도

입력 2025-02-17 19:00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치가 거세지는 가운데 세법이 여야의 정쟁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던 상속세 개편안이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등 정치적 셈법이 지나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법의 원칙인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세법 정쟁’은 2월 임시국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1일 조세소위원회를 열어 반도체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을 확대하는 ‘K칩스법’ 등을 처리했다. 그러나 야당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여야 극한 대립 속에 정부·여당이 세제 개편을 발표하면 야당이 비토하는 구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방안은 1년 넘게 표류 중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세제 개편안과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일반투자형 ISA 납입 한도를 연 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늘리고 국내투자형 ISA를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여야도 지난해 11월 ISA 혜택 확대에 잠정 합의했지만 이후 계엄 사태로 정국이 경색되며 다음 달 본회의에서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소위에서도 “ISA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제도 전체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밸류업 기업 등의 가업상속공제 한도 확대’ ‘주주환원 금액 세액공제 신설’ 등의 세법 개정안은 소위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원활한 가업 승계와 밸류업 혜택 확대가 필요하다는 정부·여당과 실효성 없이 대주주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야당 입장이 평행선만 달렸다. 전통시장 사용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현행 40%에서 50%로 10% 포인트 높이는 법안도 여야 이견 끝에 심사가 보류됐다.

이에 대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은 개인의 재산권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정치인 개개인의 결정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중요하다”며 “지금은 이 개정을 누가 주도했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창남 전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 개편을 반대했던 야당이 이제와 다시 괜찮다고 하면 납세자 입장에선 세금의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세제 개편 논의가 여야 힘겨루기 양상으로 흐르며 조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도 높다. 김 교수는 “세법은 뜬금없이 추진되거나 철회돼선 안 되는 법률 개편 중 하나”라며 “사회적 신뢰 훼손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전 교수는 “선거철마다 조세 정책이 뒤바뀌지 않도록 정책 틀을 만들고 준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