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영 “왕관의 무게 느꼈던 ‘원경’… 인생 배운 작품”

입력 2025-02-18 02:11
‘더 글로리’ 최혜정으로 유명세를 탄 차주영은 ‘원경’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기품 있는 왕비의 모습을 잘 그려내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고스트 스튜디오

그간 선덕여왕, 장희빈, 황진이, 명성황후 등 많은 역사 속 여성들이 매체에 등장했지만, 태종 이방원의 아내이자 세종대왕의 어머니였던 원경왕후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없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원경’은 역사적 인물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 사랑에 초점을 맞춘 일대기를 그려 주목받았다.

파격적인 설정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배우들의 호연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지만, 단연 돋보인 건 원경왕후를 연기한 차주영이다. 그는 중후한 목소리와 태도로 기품 있는 왕비의 모습을 그려내 호평받았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차주영은 “예쁜 모습을 보이려는 욕심은 없었고, 왕후로서의 모습만 잘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내내 왕비를 흉내 내는 것처럼만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다”며 “왕관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했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tvN 제공

‘원경’은 고려시대를 끝내고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과 그의 아내인 원경의 사랑 이야기와 정쟁 등 역사를 다룬 퓨전사극이다. 정치적 동반자였던 두 사람의 치열한 애증 서사를 원경왕후의 시점에서 풀어냈다는 점이 기존 작품들과 달랐다.

차주영은 “(대본을 받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가 해야지’ 생각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역사 기반의 클래식한 사극을 늘 해보고 싶었다”며 “무엇보다도 원경왕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원경’이 처음이었다는 점이 끌렸다. 단순히 여성 서사라서가 아니라, 원경이란 인물의 최초를 그린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차주영은 원경왕후가 이방원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어린 시절부터 왕비가 되고, 나이가 들어 죽는 시점까지의 일대기를 모두 그렸다. 젊은 시절의 푸릇함과 중년의 중후함, 노년이 된 왕후의 고단함까지 다채롭게 담아내 ‘차주영 아닌 원경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4~5㎏에 달하는 가채를 내내 머리에 지고, 네다섯 겹 되는 한복을 입은 채 하루 종일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차주영은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몸이 제 기능을 못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짓눌렸던 것 같다”며 “사극에 대한 동경심이 커서 견뎠던 것 같다. 끝나면 그리워질 걸 알았지만 점점 힘에 부치니까 나중엔 ‘언제 끝나나’ 싶더라”고 토로했다.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었지만 ‘원경’은 방영 초기부터 노출과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에 대해 차주영은 “노출 연기를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촬영 전 많은 논의를 했고,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했다”며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던 건 안타깝다. 역사 재현보다는 다른 관점으로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려 했고, 끝까지 봐주시면 저희가 어떤 시도를 하려 했는지 알아봐 주실 거라 생각해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최혜정으로 눈도장을 찍은 그지만, 차주영은 ‘원경’으로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차주영은 ‘원경’을 통해 얻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며 “‘원경’을 통해 인생을 배운 것 같다. 한없이 겸손해지고 여러 생각이 들더라”며 “방영되고서 ‘애썼다’, ‘고민 많이 했겠네’ 소리만 들으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얘긴 들은 것 같아 만족한다. 연기적으론 아쉬운 게 많지만, 내 모든 걸 다 쏟았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