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땅 용도변경 수법 보니… 신천지, 법적 사각지대·행정 공백 틈탔다

입력 2025-02-18 03:02
신천지 측이 소유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의 건물은 종교용지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법의 제재를 받았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옛 인스파월드 건물. 네이버지도 캡처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소유 부지를 종교시설로 용도변경하는 과정에서 법의 사각지대와 행정 공백 등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시도는 법의 제재를 받았지만 비슷한 사례를 겪는 인천 중구와 경기도 과천 등지에선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어 지역 교계와 시민사회의 관심이 촉구된다.

최근 의정부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이우희)는 A씨가 고양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용도변경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의 건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신천지 본부가 있는 경기도 과천 10층 건물 모습. 네이버지도 캡처

17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의 한 물류센터 건물 소유주인 A씨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해당 건물에 대해 지속해서 종교부지 용도변경을 신청했고 같은 해 8월 건물 일부 면적에 대해 사용 승인을 받았다. 신천지 측은 공무원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뀐 틈을 타 용도변경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천지 측은 ‘법적 사각지대’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판결문에서 드러났다. 건축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종교시설 용도로 변경하려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5000㎡ 이상이면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이번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로고스의 이정미 대표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씨는 종교시설 사용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법을 피하고자 면적 일부에 대해서만 용도변경을 신청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심의를 잠탈하기(피하기) 위해 A씨가 축소 신청한 사정을 고려하면 용도변경 허가 존속에 대한 원고의 신뢰는 보호 가치가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로고스 소속 임형민 이정미 임해성(오른쪽부터) 변호사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판결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재판부는 또 신천지 측에 용도변경을 허가할 경우 학습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해성 변호사는 “이단 여부를 떠나 신천지의 사용승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지역사회와 갈등이 발생해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을 것이라 본 것이다”고 분석했다. 임형민 로고스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편법을 이용한 종교시설 허가 신청은 지역의 공익성을 침해할 때는 당국의 권한으로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종교부지 용도변경 문제로 그동안 복수의 지방자치단체와 마찰을 빚은 신천지 문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인천 중구 옛 인스파월드 부지와 경기도 과천시의 신천지 총회 본부 건물이 있다.

신천지는 2015년 2016년 2023년 세 차례에 걸쳐 인천 부지를 종교용지로 용도변경 하려 했으나 중구는 지역사회 갈등을 이유로 모두 불허했다. 신천지 측은 2023년 8월 행정 공백을 틈타 공연장과 일반음식점 등을 포함한 ‘문화 및 집회시설’로 건물 용도변경을 재차 신청했고 중구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주민의 반발이 거세졌고, 중구는 지역 내 갈등을 이유로 다시 해당 건물의 착공을 불허했다. 신천지 측은 이에 반발해 현재 인천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최근 신천지가 10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과천시도 지역 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책을 논의 중이다. 신천지 측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세희 변호사는 “신천지 종교부지 문제를 단순히 종교 문제로 국한하기보다는 일반 시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권과 같은 공익성에 피해가 가지 않는지, 지역 갈등이 심화하진 않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