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 희망 없다”… 해외로 눈 돌리는 게임사들

입력 2025-02-19 00:02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도 수확할 과실이 없다면 굳이 그 길을 갈 이유가 없다. 게임사들이 국내 시장을 점점 외면하는 이유다.

한국 게임 시장이 끝 모르는 침체에 빠지고 있다. 경제 불황에 고환율, 정치적 불확실성, 그리고 게임 관련 각종 규제가 겹겹이 더해진 상황에서 게임사들은 위기 요인은 많고 기대 수익은 적은 한국 시장에 매력을 못 느끼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17일 한 대형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사업하기 까다로운데 시장은 줄어드는 국내에서 애써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중국 게임사의 국내 시장 교란이 심해지고 각종 규제마저 강해지는 분위기를 우려하면서 “한국 대탈출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내 게임 업계 투톱인 넥슨과 크래프톤은 모두 해외 매출 비중이 훨씬 높다. 일찍 중국 시장에서 ‘던전앤파이터’로 크게 성공한 넥슨은 지난해 해당 지식재산권(IP)을 모바일로 이식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중국에 선보여 초대박을 쳤다. 이 덕택에 넥슨은 지난해 국내 게임사 중 처음으로 매출 4조 원 클럽에 가입했다.

크래프톤의 대표작 ‘배틀그라운드’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17년 출시 당시 유럽·북미 등 서구권에서 인기몰이를 한 이 게임은 동남아, 인도, 중국 등 세계 각지로 서비스를 확대, 해외 매출 비중을 90%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3026억 원으로 게임 업계 최고를 기록한 원동력이었다. 3년의 침체 끝에 지난해 흑자 전환한 넷마블도 해외 매출 비중이 83%다.

반면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게임사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제작에 매진했던 카카오게임즈는 국내 모바일 시장 쇠퇴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2021년 창사 첫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지난해에는 7388억 원 에 그쳤다. 1년 전보다 27.9%나 줄었다.

국내 게임 시장은 주력이었던 모바일 분야가 크게 꺾이며 전체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센서타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 매출은 28억 달러로 전년 대비 1억 달러가량 줄었다. 2022년 하반기 총매출 35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가파른 내림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산 게임의 무분별한 물량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17일 기준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 5종에 중국 게임이 4개를 차지했다. 중국산 게임은 수익 대부분을 소셜미디어 광고에 들이부으며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시장은 축소되는데 중국 게임의 공략은 더 거세지면서 한국 게임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불분명한 게임 서비스 허가제(등급 분류), 사행·중독 관점의 각종 규제도 게임사에 적잖은 부담이다. 가상화폐를 연계한 블록체인 게임은 현행법상 아예 서비스할 수 없는 환경도 걸림돌이다. 한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여전히 경제 호황인 미국과 역대 최대 규모 추경으로 돈을 푸는 중국, 세제 혜택으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기타 국가로 방향타를 트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