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토요일 밤의 학살

입력 2025-02-18 00:40

미국 경제에서 ‘토요일 밤의 학살’은 1979년 10월 6일 토요일에 열린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 기자회견(기준금리를 단숨에 4% 포인트나 올린)을 일컫지만, 정치에선 1973년 10월 20일의 사건을 그렇게 부른다.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그 토요일 저녁 법무장관에게 워터게이트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자신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오자 검사를 자르려던 대통령의 명령을 법무장관은 거부하며 사표를 냈고, 그것을 넘겨받은 차관 역시 사임을 택했다. 결국 차관보를 시켜 검사 해임에 성공했지만, 이는 닉슨의 워터게이트에 사법방해를 추가해 탄핵소추 및 하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 됐다.

닉슨의 지시는 법과 양심을 따르려면 거역해야 하는, 그래서 개인적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부당한 거였기에 ‘학살’이라 불린다. 지난주 트럼프 정부에서 이와 흡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 지시로 뉴욕 남부검찰청에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부패 혐의 기소를 취하하라는 명령이 내려가자 검사장 등 간부들이 줄줄이 사임했다. 검사들이 공소 취하 서명을 거부할 때마다 법무부는 ‘그럼, 다음 사람. 너도 안 해? 그럼 다음…’ 하면서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양심을 택한 7명의 옷을 벗긴 뒤 결국 커리어를 택한 검사를 찾아냈고, 탄탄한 증거로 유죄 판결이 유력했던 시장의 혐의는 없던 일이 됐다.

닉슨의 학살과 외견상 비슷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굳이 안 해도 되는 거였다는 점이다. 궁지에 몰렸던 닉슨과 달리 트럼프는 권력을 막 거머쥐었고, 민주당 소속인 아담스 시장을 봐줘서 얻을 거라곤 이민자 추방 협조 정도에 불과했다.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한 것이다. “시장 기소가 대통령 국정에 장애가 된다”는 노골적 사유를 들어서. 미국 언론은 이를 “법과 양심을 들먹이며 내 지시를 거부할 공직자는 지금 나가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자신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선언이란 것이다. “짐이 곧 국가”라는 루이 14세를 떠올리게 되는데, 요즘 트럼프 행태를 보면 정말 황제가 되려는 것 아닌가 싶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