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인한 판막 섬유화·염증 등 원인
흉통·실신·숨참… 증상 조금씩 달라
낡고 고장 난 판막 새 인공 판막 교체
치료 후 혈압·콜레스테롤 관리 필수
흉통·실신·숨참… 증상 조금씩 달라
낡고 고장 난 판막 새 인공 판막 교체
치료 후 혈압·콜레스테롤 관리 필수
급속한 고령화로 퇴행성 심장판막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판막은 심방과 심실로 불리는 심장 내 4개의 공간에 붙어있는데, 피가 역류하지 않고 한쪽으로 흐르도록 해 주는 ‘문’ 역할을 한다. 삼첨판막(우심방과 우심실 사이) 폐동맥판막(우심실과 폐동맥) 승모판막(좌심방과 좌심실) 대동맥판막(좌심실과 대동맥)이 있다. 이런 판막들도 마치 소모품처럼 나이 들면 딱딱해지거나 협착이 되거나 얇아져 찢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혈액이 제대로 나가지 못해 심장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심부전, 부정맥 등의 병을 일으킨다.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혈전(피떡)이 뇌혈관으로 흘러가 뇌졸중을 부를 수도 있다.
70세 이상에서 심장판막질환 급증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 심장 전문 부천세종병원 이현종 심장내과 전문의는 17일 “특히 70세 이상에서 심장판막질환의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며 80세 이상에선 10% 이상 보고된다”고 밝혔다. 노화로 인한 판막의 섬유화(칼슘이 쌓여 딱딱해짐), 염증, 조직 퇴행 등이 원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만성 콩팥병 같은 기저질환이 오래 지속되면 이런 변화를 가속화한다. 이 전문의는 “과거 감염병, 위생 상태와 연관 높았던 ‘류머티즘성 판막질환’의 빈도는 점점 줄어드는 대신 노화에 의한 심장판막질환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초고령 사회에선 이런 경향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판막 질환은 대동맥판막과 승모판막, 삼첨판막, 폐동맥판막 순으로 많이 발생한다. 온몸으로 피를 뿜어내는 펌프 역할을 하는 심장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좌심실이다. 좌심실의 앞(입구)에 승모판막이, 뒤(출구)에 대동맥판막이 있어 두 판막에 협착이나 역류가 생기는 경우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 폐동맥판막의 협착·역류 빈도는 매우 드물고 성인에선 흔치 않다. 삼첨판막질환 역시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다.
판막에 따라 질환의 증상은 조금씩 다르다. 승모판막과 대동맥판막의 열리는 구멍이 작아져 혈액이 원활히 흐르지 않을 땐(협착증) 흉통, 실신, 숨참이 3대 특징이다. 승모판막과 대동맥판막, 삼첨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피가 역류할 땐(폐쇄 부전증) 다리가 붓거나 가슴 답답, 피로감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 삼성서울병원 박성지 판막질환센터장은 “판막 질환은 초기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노인들은 증상이 있어도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고 방치하기 쉽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계단 한층 오르기가 버거울 정도로 숨이 차는 등 평소보다 심한 증상을 느낀다면 빨리 병원을 찾아 진료받아 볼 것을 권고한다.
새 판막 교체, 허벅지 통한 시술 부상
낡고 고장 난 판막은 새 인공 판막으로 교체해 치료한다. 최근엔 고령자나 기저질환자가 많은 점을 감안해 전신마취와 가슴을 여는 개흉수술 대신 ‘비수술적 판막질환 치료’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허벅지 동·정맥으로 가는 도관을 삽입하고 그 안으로 새 판막(조직 판막)을 넣어 문제가 발생한 심장의 판막 부위까지 밀어 올린 뒤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현종 전문의는 “전신마취 하에 심장을 멈춰 세운 후 병든 판막을 치환하거나 성형하는 수술은 가장 위험도가 높은데, 심장 내 혹은 다른 장기에 동반 질환까지 있는 경우 수술 후 합병증과 사망 위험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수술이 아닌, 최소 침습 시술법이 부상한 이유다.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경피적 대동맥판막이식술’, 이른바 ‘타비(TAVI) 시술’이 대표적이다. 부천세종병원 박하욱 심장내과 전문의는 “75~80세 이상 고령이거나 동반 질환 혹은 이전 심장 수술 등으로 수술 위험도가 높은 환자에게 적용하며 출혈이 거의 없고 회복 기간이 짧으며 별다른 합병증이 없다면 시술 2~3일 후 퇴원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22년 5월부터 연령과 중증도에 따라 건강보험이 차등 적용돼 환자 부담도 덜어졌다.
‘경피적 승모판막 치환술(TMVR)’과 ‘마이트라클립술(TEER)’은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 승모판막의 협착과 역류증이 있는 환자들이 대상이다. TMVR은 역시 허벅지 정맥 도관을 통해 기존 낡은 판막 위에 새로운 승모판막을 덧대는 방법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널리 시행되지만 국내에선 일부 서울 소재 상급 대학병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2023년 신의료술로 인정됐다.
과거 개흉 수술로 고장난 승모판막을 조직 판막으로 한 번 교체한 이들은 10~15년 후 판막이 다시 좁아지거나 심한 역류가 생겨 승모판막 재치환술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박성지 교수는 “기대 수명이 늘면서 과거 승모판막을 수술로 치료한 환자 중 교체가 필요한 경우도 덩달아 증가 추세인데, 조직 인공 판막의 경우 수명이 10~15년 정도로 망가지면 또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재치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첫 수술을 받을 때 이미 60~80대인데, 다시 한번 수술받으려면 위험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TMVR이 적합하다. 삼성서울병원은 20년 전 조직 판막으로 승모판막 교체 수술을 받았던 80대 여성 환자에게 최근 다시 TMVR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경피적 승모판막 성형술’로 불리는 마이트라클립술은 승모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혈액이 역류하는 경우 시행된다. 허벅지 정맥에 미세 도관을 넣어 심장까지 접근한 뒤 도관 끝에 장착된 클립 장치로 느슨하거나 제대로 닫히지 않는 승모판막의 앞뒤 날개를 고정해 혈액 역류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현종 전문의는 “TMVR이 기존 승모판막의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환자에게 판막 전체를 치환하는 것이라면 마이트라클립술은 클립을 통해 혈액의 역류만 줄이거나 없애주므로 치료 범위가 더 좁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단, 마이트라클립술과 TMVR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3000만~4000만원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 전문의는 “심장 판막질환 치료 후에는 초음파 검사 및 혈압·콜레스테롤 관리가 필수다. 또 최선의 약물 치료(항혈소판제, 항응고제 등)를 했을 때 고위험 시술 효과도 잘 나타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환자들에게 시술이 이뤄진 만큼, 심장 외 다른 질환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