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의 A교회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교회 내에서 ‘방과후학교’ 형식의 ‘비전스쿨’을 운영했다가 인근 학원가와 마찰을 빚었다. 학원이나 다름없는데 관련 법을 지키지 않아 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어진 법정 다툼에서 교회 측은 “공동육아를 위한 엄마들의 공동체이자 돌봄 단체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교회 B목사는 1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교회의 아이 돌봄 사역은 그동안 지역 내 저출산 문제 극복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며 “이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교회 성도들과 인근 학부모들이 품앗이 형식으로 헌신하며 아이들을 돌본 것뿐인데 이를 불법이라 본다면 누가 애를 낳겠는가”라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일정 요건 갖춘다면 돌봄 사역 가능
하지만 최근 관련 법이 개정되며 A교회처럼 비슷한 어려움을 겪던 교회들의 고충이 한시름 덜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개정된 건축법 제12조 시행규칙에 따라 일정 요건을 갖춘 교회 등 종교단체가 자체 시설을 영·유아나 노인, 장애인을 위한 ‘노유자시설’, 일명 돌봄시설로 운영하고자 할 때 필요한 용도변경 등의 절차가 간소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자체 시설을 지역사회를 위한 돌봄시설로 활용하는 일이 한층 수월해진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법 개정 이유를 두고 “돌봄시설의 원활한 공급을 통한 저출산 극복방안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언급한 것처럼, 법 개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전까지는 ‘종교시설’인 교회가 교회 건물을 주중 돌봄시설로 활용하려면 노유자 시설로 추가 신고, 용도 변경하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사단법인을 만들어야 하는 등 행정적 재정적 부담이 컸다. 그동안 교계는 이 같은 제약은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한 한국교회의 참여를 막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며 정부에 제도 완화 등을 요청해왔다. 교회의 유휴 공간을 돌봄시설로 활용하게 되면 지역 학부모들의 고충을 한결 덜어줘 국가적 위기라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역 교계와 공동캠페인을 벌여 온 김철영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은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지금부터라도 출산과 돌봄시설 운영에 관한 구체적 체계를 마련하는 일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더 집중해야
교계 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법 개정으로 인한 혜택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교회성 강화 차원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시설이 부족한 교회 근처 사각지대에 우선 집중해 기존 돌봄 기관과 갈등을 빚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웃과 사회를 위한 공적인 역할 수행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장인 장헌일 신생명나무교회 목사는 “무엇보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공교회성을 회복하려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며 “교회의 사명은 지역사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로서 공교회성을 갖추고 상호 협력하며 지역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목사는 이어 “행정적 재정적 투명성을 확보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을공동체 등 활용 돌봄 사역도 주목
전국 210여개 시군구에서 시행 중인 ‘마을공동체’ 혹은 ‘마을교육공동체’ 조례를 활용해 돌봄 사역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마을학교’ 등의 이름으로 벌이는 이 사업은 마을 내 학생, 교직원, 학부모, 마을주민 등이 함께 학생의 교육 활동 지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한동대 VIC초중등교육지원센터장을 지낸 제양규 교수는 “이는 학원법 저촉의 우려가 없으며 프로그램 운영과 인건비 확보 등의 문제에 있어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저학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 간식 지원부터 프로그램 참여에 이르기까지 학부모를 비롯해 경험 있는 교사들의 참여를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이뤄진 정부 주도의 공급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교회가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교회가 양육뿐 아니라 영성까지 돌볼 수 있도록 가족 단위의 다양한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영·유아 자녀 부부들이 육아와 자녀교육에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고 도움을 나눌 수 있도록 소모임을 활성화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장 목사는 “접근성 신뢰성 전문성을 갖춘 돌봄시설이 지역에 있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것이다. 이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초저출생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국가와 지역소멸 위기 상황을 맞았다. 교회가 돌봄 사역에 관심을 두는 일은 선교적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돌봄통합지원법’이 내년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 정책이 지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예측된다”며 “교회가 돌봄 복지의 사각지대를 찾아 공공성 신뢰성 전문성을 갖춘 진정한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많은 관심을 두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