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한 달여 만에 이뤄진 한·미, 한·미·일 외교수장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의 북한 비핵화 및 확장억제(핵우산) 제공 원칙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체제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패싱’ 우려를 완화하는 긍정적 시그널로 평가된다. 다만 미국이 내밀 ‘청구서’ 수위를 낮추는 실효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계기로 개최된 ‘아시아·유럽 안보 연계 패널 세션’ 행사에서 “미국의 흔들림 없고 강력한 동맹 공약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 관계를 거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워싱턴에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에 대한 강력한 초당적 지지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방위비 재조정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 신뢰성에 우려가 있는지 묻자 나온 답변이었다.
조 장관은 다만 “자연스럽게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역내 문제 대응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 달라는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거래주의 원칙을 내세우며 확장억제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자체 핵무장 관련 입장도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성격을 언급하며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에서 독자적 핵 억지력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는 배경”이라고 짚었다. 또 “아직 ‘플랜B’를 이야기하기엔 다소 시기상조”라면서도 “지금으로선 플랜B를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이것이 곧 논외(off the table)로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북한과 역내 다른 지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완전히 대비해야 한다”며 “어떤 시나리오가 발생하든 워싱턴에 있는 우리 동맹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이날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 이어 짐 리시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 등 상·하원 외교외원회 지도부를 연달아 만나 한·미동맹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조 장관과 양자회담에서 “미국으로서는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각국 국내 상황과 무관하게 신뢰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최 권한대행과 한·미동맹의 강인함에 대한 신뢰를 재차 밝혔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공식 문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점은 의미가 있다”며 “북핵 문제에 대한 미 행정부의 정책 연속성이 강조됐다”고 평가했다.
양국은 이번 회동에서 조선업, 원자력·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취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를 이뤘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인 에너지·조선업 분야에 대한 한국의 적극 협력을 요청한 것에 대해 호응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거래적 성격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때 한국이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부각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