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사진)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 다수의 정치·사회계 인사 명단과 함께 ‘폭파’ ‘확인사살 필요’ 등 내용이 적힌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수첩에는 ‘연평도 이송’ ‘실미도 하차 후 이동간 적정한 곳에서 폭파’ 등 내용이 담겼는데, 노 전 사령관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폭발물을 활용한 사살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다각도 검증을 통해 노 전 사령관이 수첩 내용을 다른 관련자들과 논의했는지, 실제 실행 계획이 있었는지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70쪽 분량의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 이미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명단 외에 문재인 전 대통령,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무죄 취지 의견을 낸 권순일 전 대법관,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판사 등 이름과 함께 ‘이재명 지원 판·검사’들 문구가 적혔다. ‘문(재인정부) 때 정치 검찰’이라며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언급됐다. ‘차범근(전 축구감독), 좌파 연예인’도 있는데, 차범근씨가 조 전 대표 재판부에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는 ‘수거 대상’의 ‘처리 방법’도 등장한다. 수첩에는 ‘연평도 등 무인도’ 이송과 함께 ‘폐군함’이나 ‘민간 대형 선박’을 이용하고 ‘실미도에서 집행 인원은 하차’ ‘적절한 곳에서 폭파’하며 ‘발신기에 의한 폭발은 안 될 수 있다’ ‘시한폭탄 활용’ 등 내용이 적혔다고 한다. 수거 대상을 태워 무인도로 옮긴 뒤 미리 설치한 폭탄으로 사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다. 수첩에는 ‘헌법 개정(재선~3선)’ ‘국회의원 숫자: 1/2’ 등 윤석열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의원 수를 줄이려 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구도 등장한다.
이 같은 수첩 내용이 비상계엄 사태와 어디까지 관련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명단 또는 폭파 계획 등은 검찰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권에선 ‘허황된 내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수첩이 파편적 단어 나열로 돼 있고 날짜 또는 작성자나 발언자가 적히지 않아 작성 경위 등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 전 사령관이 침묵을 지켜 실체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에게 “노상원을 잘 도우라”고 지시했고, 실제 선거관리위원회 투입 작전에 노 전 사령관이 깊숙이 관여했던 만큼 수첩 내용을 ‘망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문 사령관 등에게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을 다 잡아 족치면 부정선거가 사실로 확인될 것”이라며 “야구방망이 등을 잘 준비하라”는 극단적 발언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거 대상인 이 대표와 조 전 대표 등 이름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작성한 체포 명단에도 있는 등 기존 수사 결과와 부합한다. 수첩에는 수거 작전에 ‘경찰 활용’ 표현이 등장하는데, 국군방첩사령부가 국가수사본부에 체포조 운영 지원을 받으려 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수첩에는 여의도 봉쇄에 수도방위사령부를 활용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는데 계엄 선포 후 수방사가 국회 통제에 투입됐던 것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