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산층의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진정성에 의문이 간다. 이 대표가 ‘반도체 주 52시간 예외’, ‘전 국민 현금 25만원 지급 철회’ 등을 시사했다가 말을 바꾸거나 입장을 번복한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허용할 것처럼 하다가 노동계가 반발하자 없던 일로 했고, 추가경정예산의 걸림돌이었던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을 철회하겠다고 했다가 막상 추경 협상이 시작되자 이름만 ‘지역 화폐’로 바꾼 25만원 지급 방안을 다시 들이밀었다.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라며 꺼내든 방안을 이 대표 스스로 뒤집는 일이 잦다 보니 상속세 완화 주장도 언제 또 번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과거에는 상속세가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이제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어도 상속세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00년에는 상속증여세를 낸 사람이 3만9000명이었으나 2022년에는 26만8000명으로 껑충 늘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으나 상속세율과 공제한도 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에 45%에서 50%로 상향된 최고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부동산이 자산의 80%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가정에서는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 상속세를 내기 어렵다. 정부가 지난해 공제한도를 대폭 올리고 구간별 상속세율을 크게 낮추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내놓은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을 담은 것이었다. 이 대표도 지난해 8월 “상속세 공제 금액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고, 이후 민주당 의원들도 앞다퉈 상속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25년만의 상속세제 개편 시도를 국회에서 무산시킨 것은 이 대표의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13개 예산 부수법안을 처리하면서 유일하게 상속·증여세법 개정안만 부결시켰다. 민주당의 반대 논리는 최고 세율 인하가 부자 감세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 주도로 부결시킨 상속세제 개편안을 다시 꺼내 든 것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중도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가 유독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5% 포인트 차이로 뒤진 데에는 집값 상승에 따른 종합부동산세 인상이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 대표가 중산층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의 잦은 말 바꾸기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부터 고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