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양아버지가 있다. 바로 피홍배 삼정CW㈜ 회장님이다. 피 회장님은 88컨트리클럽 사장이셨던 여명현 장군님 덕에 만나게 됐다. 피 회장님은 1964년부터 골프를 쳤을 만큼 골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안목을 갖고 계셨다. 평소 골프 인재를 발굴해서 함께 키워 보자고 의기투합했던 여 장군님과 피 회장님은 프로 초년생이었던 나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해 주셨다.
자서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도 썼을 만큼 피 회장님은 내가 타고난 테두리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힘을 북돋워 주신 분이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내 손에 장대를 쥐여 주고 “네 힘으로 뛰어넘어라”하며 채찍질하셨다. 장대를 쥘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막막할 때는 사다리를 세우고 “내가 붙잡아 줄 테니 어서 넘어가라”하고 등을 떠미셨다. 사업가로서 수차례 위기를 이겨 내신 분이라 자기경영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셨다.
피 회장님은 내가 프로 골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라도록 도와주셨다. 늘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시던 피 회장님은 “아들 최경주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십여 년 전부터는 나에게도 ‘사람을 키우는 즐거움’을 배우라고 하셨다. 운동선수로서만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사회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가장의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됐다는 이유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피 회장님은 돈에 대해서도 특별한 철학을 갖고 계신다. “지금 내게 있는 돈은 하나님이 나한테 잠시 맡기신 거지 본시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망설임 없이 나눠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 또한 나눔의 덕을 입었다. 내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내가 다 해결해 줄게”라고 하시더니 내가 요청한 액수의 두 배나 되는 후원금을 만들어 주셨다.
“후원금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새끼손가락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부분일 뿐이야. 부담스러워 할 것 없다. 앞만 보고 가거라. 지금까지 나는 내 뒤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앞으로 나가며 살아왔다. 네 뒤에도 하나님이 계시니 반드시 너를 지키고 돌봐 주실 게다.”
하늘이 맺어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각별하게 사랑해 주시는 피 회장님으로부터 아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등불을 비춰 주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운다. 피 회장님은 현재 최경주재단의 회장을 맡아 재단 운영의 중심을 잡아주고 계신다.
나는 큰 상금을 타면 돈을 많이 번다는 기쁨보다 넉넉히 나눌 수 있는 주머니가 채워진다는 사실에 덩달아 마음이 풍성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골프채를 쥐고 죽어라 연습하고 있을 후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