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 첫 시추에 "사기"
단타 매매만 기승 주식투자
빨리빨리 대신 미래 일궈야
단타 매매만 기승 주식투자
빨리빨리 대신 미래 일궈야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을 꼽으라면 ‘참을성’이란 단어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게는 일상부터 크게는 국가적 사안까지 참을성이 실종된 지 오래됐다. 치열한 경쟁과 순식간에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안목으로 참을성을 등한시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빼앗길 개연성이 크다. 그것이 당장 눈에 안 보이는 미래 가치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최근 사례로는 동해 가스전을 들 수 있겠다. 최대 2000조원의 경제적 가치라는 동해 가스전의 가능성은 불과 8개월 전에야 수면에 떠올랐다. 그 첫술을 뜬 것이 지난해 12월 시작해 지난 4일 완료한 ‘대왕고래’ 유망구조 탐사 시추다. 말마따나 탐사를 해보는 단계인데도 한 번에 1000억원이 든다는 점 때문에 반발이 컸다. 그래선지 야당은 올해 505억원을 배정했던 예산의 98%를 쳐내고 8억원만 정부 손에 들려줬다. 결과를 듣고는 더 난리가 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일 백브리핑을 통해 ‘경제성이 없었다’는 잠정 결과를 내놨다. 예산을 삭감했던 야당은 이번엔 “대국민 사기극”이라면서 집중 포화했다.
흐름만 보자면 그럴 만도 해보이지만 참을성을 갖고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서민들이 한 주를 버티는 희망마냥 구매하는 로또복권의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814만여번을 사야 한 번 당첨될까 말까라는 얘기다. 자원개발 역시 과학적 탐사를 통해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 ‘당첨’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한 번 해보고 안 되니 ‘사기’라고 치부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2023년 6월까지 중국은 4만8779번, 일본은 813번의 탐사 시추를 진행했다. 야당 논리대로라면 중국은 수년에 걸쳐 수만번의 사기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누가 이 논리를 옳다고 받아들이겠나 싶다.
참을성 없이 자원개발을 포기했을 때 확실한 것은 희망도 포기한다는 점이다. 1000억~2000억원 정도 아낄 수는 있겠지만 발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야당은 그 수십배인 35조원 규모의 추경을 하자고 한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주자는 안을 포함한 규모다. 천문학적인 이 일회성 돈이 과연 어떤 희망을 주고 어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을성 부족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는 정쟁에 휘둘리는 국가적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30세대의 투자 성향에서도 참을성은 찾아볼 수 없다. 긴 안목을 두고 투자해야 할 부동산은 ‘광풍’이 일 때 투자하는 종목처럼 인식되고 있다. 결과는 어떤가. 영혼까지 끌어 투자한 이들은 가계부채 증가 속에 고금리를 만나며 한계차주로 돌변했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경매 매물은 2013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많은 투자가 실패로 돌아갔다.
주식시장에서도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투자의 구루(스승)’라 불리는 워런 버핏식 투자는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기간을 두고 투자하는 가치투자보다는 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린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참을성 부족이 발로가 된 듯하다. 이것이 도박중독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기도 하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주식·가상자산 투자가 투기적 행위에 가깝고 중독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도박적 행동’으로 정의한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만들어낸 현상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 치부하기는 힘들다. 이차전지 기술은 2000년대 중반쯤 실시한 산업부 연구·개발(R&D)이 시작점이었다. 20년 가까이 참을성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한 덕에 빛을 봤다. LG전자가 세계 1위 에어컨을 개발한 것도 수년간의 적자를 참고 견딘 덕분이었다. 이 사례들은 빨리빨리 문화의 독촉 속에서도 참을성을 구비했을 때 미래 가치를 일굴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정치권을 포함해 지금의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얘기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