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후원·헌혈 뚝, 자살률 치솟는데…‘탄핵 블랙홀’에 묻힌 약자 목소리

입력 2025-02-17 03:00 수정 2025-02-20 18:43
김재영 겨자씨교회 목사가 16일 서울 동작구 교회에서 노숙인들과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동규 기자

헌혈은 줄고 연탄 후원도 급감했다. 자살률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관심은 온통 정치에 쏠려 있다. 이럴수록 교회가 어려운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 12:15)는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후 두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는 탄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빅카인즈 데이터 분석 결과 10대 종합일간지에서 ‘윤석열’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 수는 취임(2022년 5월 10일) 이후 계엄 전(2024년 12월 2일)까지 총 21만4583건, 하루 평균 123.5건이었다. 하지만 계엄 이후(2024년 12월 3일~2025년 2월 9일) 관련 기사는 3만4000건에 하루 평균 492.8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권력 중심의 보도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며 “교회 역시 약자를 위한 역할을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겨울철 필수 지원은 위기를 맞았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연탄 후원은 전년 대비 68% 감소해 54만4440장에 그쳤다. 독감 확산으로 혈액 수급도 위태롭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6일 기준 혈액 보유량은 4.9일치에 불과하다. 5일분 미만이면 ‘관심’, 3일 미만이면 ‘주의’ 단계가 발령된다.

노숙인 사역에 관한 관심도 정쟁에 묻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겨울은 동사 위험이 커지는 까닭에 집중적인 사역이 필요한 계절로 꼽힌다. 노숙인 사역을 하는 김재영 겨자씨교회 목사는 “지난해 12월 3일 한 신문사가 ‘세계 장애인의 날’인 3일에 맞춰 지적장애가 있는 노숙인을 보도했으나 계엄령 발동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며 “정치적 혼란 속에 고립된 사람들은 더욱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잃어가는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자살은 사회 문제이자 경제 문제다. 40~50대 남성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이들 대부분이 소상공인”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참사 피해자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23년 통계에서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7.3명으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연합뉴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역단체 ‘희년함께’를 도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는 이철빈 전세사기깡통 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전세 사기 피해자는 2만5000명 이상이며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원 체계는 여전히 혼선 상태”라고 밝혔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15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분향소에서 열린 49재에서 슬퍼하는 모습. 연합뉴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도 현재 진행형이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유가족들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교회가 끝까지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동행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가 정치적 논쟁을 넘어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동민 백석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위기의 순간에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다”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19년 3·1운동 당시 선교사들은 부상자를 돌보며 민초들과 연대했다. 반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력과의 관계 형성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가 지금처럼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면 쇠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목회자 및 성도들과 함께 ‘교회의 정치 세력화를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안재경 온생명교회 목사는 “복음은 연약한 사람을 일으키는 실천을 동반한다”며 “한국교회는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손동준 김동규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