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는 1940년 12월에 등장했다. 마블의 히어로들 중 가장 원로급이다. DC코믹스와 미국 만화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마블사가 1939년 설립됐으니 마블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캡틴’은 미국의 대장이라는 뉘앙스로 쓰이지만 실제 캐릭터의 계급(대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어벤져스 멤버들 중 ‘넘버 원’이라는 의미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허약하다는 이유로 육군 입대가 거부됐으나 초인 병사 계획에 자원해 특수 혈청을 맞고 모든 능력을 인간의 한계까지 끌어올린 초인이 되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나치에 맞서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공을 세워 미국인의 우상으로 떠오르지만 미사일 해체 작업 중 폭발 사고로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냉전 시기에 깨어나 소련에 맞서 싸우는 캐릭터다. 전쟁에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 앞장서고 미국의 강한 애국심을 상징하는 만큼 보수우익 성향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고지식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미국 정부 편인 건 아니다. 순수한 도덕심을 가지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는 자유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면 미국 정부에도 등을 돌린다. 작가들은 여러 작품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과 위선을 꼬집었다. 미국을 진정 사랑하는 캡틴 아메리카이기에 미국의 추악한 면을 보면 누구보다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인류나 미국의 적으로 설정된 상대와 싸우는 모습만 보고 캡틴 아메리카를 미국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15일 주한중국대사관에 난입하려다 체포된 40대 남성은 ‘중국대사관을 테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적국으로 상정하고 대사관 공격을 정의로운 일로 여긴 듯하다. 하지만 타국의 외교공관에 대한 공격은 진짜 캡틴 아메리카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애국자가 되고 싶다면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난처하게 만드는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