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의 해양 이야기] 역동적인 해양 운동, 쉼없이 해수면에 그려내는 한폭의 그림

입력 2025-02-18 00:32

파도·해류·조석 등 흐름의 변화와
폭풍·지진·화산 등이 직접적 요인
기후 예측·생물 다양성 보호 위해
해양 운동에 꾸준한 관심 가져야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사진 중 하나로 꼽힌다는 1972년 아폴로 17호 우주선에서 승무원들이 촬영한 지구 사진은 ‘푸른 구슬(Blue Marble)’로 불린다. 2001년 영국에서 초연된 자연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Blue Planet)’ 첫 번째 에피소드는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해설로 시작한다. “우리 지구는 푸른 행성입니다. 지구의 70% 이상이 바다로 덮여 있습니다. 태평양은 지구의 절반을 덮고 있습니다.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해도 여전히 땅을 거의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푸른 구슬’과 ‘푸른 행성’이라는 이름을 딴 아름답고 독특한 지구에서 푸른 바다는 단순하고 넓은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발전된 위성 관측 기술은 해양 표면의 모습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드러냈다.

10년 전인 2015년 2월 2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쿠아 위성에 실린 모디스(MODIS) 센서로 촬영한 황해의 해색(海色·바다의 경치) 영상이 공개됐다. 해수면에 꽉 들어찬 소용돌이 등 작은 구조들과 해안 근처 얕은 수심 지형을 그대로 나타낸 모습은 해양학자들의 큰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영상 공개에 참여한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색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 수베이 연안과 한반도 남서쪽의 갈색 해역은 해안 부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탁한 해수이며, 얕은 수심 및 조류와 강한 바람에 의한 퇴적물 혼합에서 기인한 것이다. 제주도 서쪽과 황해 내부에 나타난 복잡한 구조들은 겨울철에 황해로 들어오는 황해난류에 수반된 운동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설명된다. 바닷물이 바람과 해류를 따라 움직이고 섞이면서 만들어낸 무늬에 물속의 부유물질로 색을 입혀 겨울 바다의 민낯을 드러낸 이 모습은 해양의 역동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해양의 역동성은 황해에 국한되지 않으며 동해, 태평양, 북극해 등 모든 바다에서 관찰된다. 무늬들의 모양과 시공간적 크기가 다를 뿐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2015년 2월 아쿠아 위성에 탑재된 지구환경 관측을 위한 고해상도 스캐너 모디스(MODIS) 센서로 촬영한 황해의 해수면 해색. NASA 홈페이지

해수면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의 핵심은 해양 흐름의 변화다. 이를 대표하는 현상으로 파도, 해류 및 조석 등이 있다. 파도와 해류는 대부분 바람에 의해 발생하고 성장하며, 해류는 운동 규모가 커질수록 형태가 지구 자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파도와 함께 친숙한 현상인 조석은 달과 태양의 인력에 의해 발생한다. 지구, 달,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에 따라 흐름 방향이 바뀌며 해수면의 높이가 변하는 해양에서 가장 규칙적인 운동이다. 강한 폭풍과 해저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현상들은 일시적으로 급격한 해양 운동을 유발한다. 폭풍 해일과 쓰나미로 불리는 이들 현상은 육지에 근접할수록 강해지며 급격한 해수면 상승을 초래해 역동성을 넘어 두려움을 안겨준다. 이러한 해양 현상들은 대부분 해안 근처에서 관측할 수 있으며, 인간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상대적으로 묵직한 대양 먼바다에서는 다른 형태로 역동성이 나타난다.

오늘날 해수면 높이는 거의 매주 간격으로 전 지구를 커버하는 고도계 위성들에서 관측되고 있다. 이 관측 자료들은 대양의 해수면에서, 특히 큰 해류 지역에 수평 크기 100㎞ 정도의 소용돌이(Eddy)들이 동그란 형태로 분포함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소용돌이는 강한 해류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으로 회전하며 이동하는 물덩어리다. 수도꼭지에 연결된 고무호스가 수돗물의 흐름에 따라 구불구불 요동치는 것처럼 빠른 해류도 제한적인 영향을 벗어나면 불안정해져 구불구불한 사행을 하고, 사행 발달이 계속되면 일부가 소용돌이 형태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소용돌이는 거의 모든 해류에서 형성되며, 특히 대양 서쪽 경계류와 남극순환류에서 두드러진다. 또 다른 소용돌이는 강한 해류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 내부에서 형성된다. 이 소용돌이는 주위 흐름의 불안정성과 바람의 영향 같은 해양·대기 상호 작용으로 생성되며, 대부분 서쪽으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용돌이는 중심부와 가장자리 간에 수온 차이를 보이며 시계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이들은 수백에서 수천㎞의 열린 바다를 수개월 동안 이동하며 사라진다. 소용돌이는 이동하는 과정에서 주위 흐름과 해수 상태를 변화시키고,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 ‘해양의 날씨’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용돌이 부근에는 진행 중인 운동으로 필라멘트나 꼬임과 같은 다양한 구조의 현상이 수반되기도 한다. 대양 해수면의 소용돌이와 주변 불규칙한 현상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마치 해양의 매 순간 기분을 그려내는 것과 같다.

해양 역동성의 핵심인 해양 운동은 궁극적으로 태양과 달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해양 안에서 재분배하는 과정이다. 이는 날씨와 기후, 물질 순환, 해양 생태계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해양 역동성은 우리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기후 변화, 오염, 미세플라스틱 같은 지금의 해양 관련 이슈들이 해양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해양 운동이 그려내는 무늬를 바꾸고, 칠해지는 색상을 변화시키는 조건을 만든다. 기후 변화는 수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고, 해양 운동에 변화를 일으킨다. 또한 해양 오염은 해양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해양의 역동적인 특성을 방해할 수 있다. 해양 운동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자연의 한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기후변화 예측과 해양 생물 다양성 보호, 오염 대응, 자원 관리 등 많은 분야에서 중요하다. 해양의 건강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그 중요성은 보이지 않지만 매우 크다.

역동적인 해양 운동은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어느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오늘도 어느 해류는/ 목마른 편지가 든 유리병 하나를 실어 나르기 위해/ 입 꼭 다문 채 온밤을 흐른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