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달과 시선의 각도

입력 2025-02-17 00:34

정월 대보름이었다. 몸은 해외에 있지만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 싶어 한국에서 가져온 건나물 밀키트로 밥을 짓고, 간식으로 견과류를 먹고, 귀밝이술 대신 화이트와인을 한잔 마셨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지나야 비로소 새해가 찾아온 기분이 든다. 달을 보러 집 근처 호수에 갔다. 추운 날씨 탓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지만 과연 여느 때보다 밝고 선명하고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짧게 소원을 빌었다. 언제부턴가 나를 위한 소원은 빌지 않는다. 대신 나보다 어려운 시간 속에 있는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빈다.

이곳은 한국보다 여덟 시간 느리기 때문에 아마 한국의 하늘에 먼저 보름달이 떠올랐을 것이다. 베를린의 하늘에 아직 보름달이 선명할 때 한국의 하늘은 아침 햇살로 눈부실 것이다. 같은 달을 바라봐도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의 모습은 달라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도 같다. 이 위치에서는 저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보는 풍경을 한국에 사는 사람이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자아가 사람의 몸이라는 공간 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개의 몸에서 느껴지는 세상이 어떤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인식은 언제나 상대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감정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사랑하고, 연민하며, 고통을 느낀다.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우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자식을 잃은 사람과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이 비슷한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을 경험해도 같은 감정을 겪을 수 있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곳에 서 있기 때문에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아는 일이며, 그렇기에 공감하고 대화하며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