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5일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자신의 트위터(현 X)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내 개인 집무실에서 함께 찍은 것인데 눈에 띄는 건 미소를 짓는 트럼프 전 대통령 앞에 놓인 책상이었다. 백악관 집무실에 있는 대통령 전용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과 똑같이 생겼다. 모조품으로 밝혀졌는데 퇴임한 지 석 달도 안 된 트럼프의 대통령직 미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4년 만에 그는 진품 앞으로 돌아왔다.
결단의 책상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1880년 미국 19대 대통령 러더퍼드 헤이스에게 선물한 것이다. 1855년 북극에서 실종된 영국 선박 ‘HMS 레졸루트’호를 발견한 미 정부가 영국에 돌려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였으며, 이 배 폐선 후 나온 목재로 만들었다. 선박의 이름을 따온 결단의 책상에서 미국 대통령들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결단의 책상이 대중에 깊이 각인된 건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다. 케네디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 백악관 공사로 뒷방에 처박힌 책상을 집무실로 다시 옮겨 화제가 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은 책상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우리의 목표는 힘의 승리, 자유를 희생하는 평화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평화와 자유를 모두 실현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할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결정할 때도 책상은 함께했다.
초강대국 지도자의 외롭고 힘든 애국적 결단을 상징한 것과 달리 트럼프정부에서 결단의 책상은 소모품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13일(현지시간) 발표된 상호관세 조치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국수주의적 정책 결정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서 이뤄졌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의 5세 아들이 책상을 배경으로 코를 후비는 모습까지 보도됐다. 트럼프의 쇼맨십을 누가 말리겠냐마는 결단의 책상 위에 한국 및 한반도 관련 안건들은 적게 올라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