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점진적으로 가능해진다. 먼저 상반기에 지정기부금단체·대학 등 비영리법인과 가상자산거래소의 가상자산 매도 거래가 허용된다. 하반기부터는 위험 감수 능력을 갖춘 일부 기관투자자의 투자 목적 매매 거래가 시범적으로 허용된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제3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고 법인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먼저 비영리법인 대학교 학교법인과 가상자산거래소의 법인 실명계좌 발급을 상반기에 허용한다. 이들 법인이 운영 과정에서 얻는 가상자산 형태의 기부금, 수수료, 추징금 등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대 고려대 서강대 동서대 등 대학 4곳은 2022년 게임회사 위메이드에서 암호화폐 위믹스를 학교당 17만~18만개(당시 10억원 상당) 기부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이를 매도해 현금화할 수 있게 됐다.
검찰과 국세청, 관세청 등 법집행기관은 지난해 말부터 실명계좌 발급이 이뤄졌다. 가상자산거래소의 경우 수수료로 받은 가상자산을 매도해 인건비, 세금 등으로 쓸 수 있다.
하반기부터는 법인 투자자가 투자·재무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매매할 수 있게 한다.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인 상장사와 전문투자자 등록법인이 대상으로 약 3500개사가 이에 해당한다. 다만 가상자산의 위험성이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사의 직접 매매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금지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018년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제한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은 2021년 종료됐지만 은행들은 관행적으로 법인 명의의 실명계좌 개설을 제한해왔다. 당시 정부는 자금세탁 및 시장과열을 우려해 개인과 달리 법인은 가상자산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국내도 법인 거래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해외에서 법인 위주로 가상자산 생태계가 조성된 사례, 국내 기업의 블록체인 등 신사업 수요가 증가한 점 등을 고려해 법인의 시장참여 허용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다만 대규모 거래로 시장에 혼란이 생길 것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은 향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전문투자자 매매의 경우 은행의 거래 목적 및 자금 원천 확인 강화, 제3의 가상자산 보관 관리기관 활용 권고, 투자자에 대한 공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아 자금세탁 등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방지한다.
가상자산 업계는 금융위 발표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는 “민관 노력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불명확한 규제를 해소하는 첫걸음”이라며 “투자자 보호, 시장 안정성,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사업자들과 함께 보완하고 이용자 보호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