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개시를 발표하며 가까운 시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푸틴과 협상에 나서면서 유럽이 충격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트럼프는 이날 푸틴과 통화한 뒤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푸틴을 주로 전화로 대응할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는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회동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그(푸틴)가 이곳(미국)에 오고 내가 그곳(러시아)에 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상호 방문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종전 협상 개시는 전날 미국과 러시아가 수감자 맞교환을 진행하며 관계 개선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발표됐다.
트럼프가 푸틴과 직접 협상에 나선다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으로부터 고립돼온 푸틴은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전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유럽연합(EU)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경제·군사 원조를 이어가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푸틴과 친밀했던 개인적 관계를 바탕으로 종전을 위한 ‘직거래’에 나선 것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평화 계획은 그 갑작스러움과 규모로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들에 충격을 안겨줬다”며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몇 년간 두려워했던 순간이 찾아왔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와 푸틴이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경우 미국·유럽의 지원을 받아 푸틴에 맞서온 젤렌스키는 종전 협상에서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이날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 “그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신중하면서도 원칙적으로는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트럼프는 또 우크라이나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전 수준으로 영토를 탈환하는 것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서 “일부는 되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지난 3년간의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이 뒤집혔다”며 “트럼프가 푸틴과 대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배제하고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합의를 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대한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날 취재진이 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동등한 구성원’이냐고 묻자 즉답을 피했다.
젤렌스키는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는 미국과 러시아가 양자 협상을 벌인다면 러시아가 제공하는 선별적 정보에 미국이 놀아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U도 종전 협상에 우크라이나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 보전은 무조건적”이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모든 협상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