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제강점기 대표적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사진) 시인이 순국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그의 모교인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는 이를 추모하며 윤동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이 학교가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1875년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윤동주를 지켜주지 못한 과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한·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어 미래에도 평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은 결정이다.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 총장은 13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80주기이자 일본의 전후 80년 그리고 한국에는 광복 80년이 되는 해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라며 “이런 역사적 전환점에서 과거 전쟁과 식민 지배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 그런 가혹한 상황 속에서 윤동주가 살아가며 시를 썼다는 것을 지금 다시 상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동주의 삶과 시를 바탕으로 새로운 평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는 한국과 일본을 더욱 긴밀히 이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1941년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2년 4월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같은 해 10월 도시샤대 문학부 영문과로 편입했다. 이듬해 7월 항일운동을 한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16일 28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도시샤대는 지난해 12월 단과대 학장회의를 통해 윤동주에게 명예문화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논의 초반 형평성 문제 등 일부 우려가 제기됐지만 학장단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윤동주의 문학적 성취나 한·일 관계에서 갖는 의미, 그를 생전에 지키지 못한 역사적 아픔 등이 고려된 결과였다.
고하라 총장은 “다양한 논의를 통해 대학 역사 속에 전쟁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과 윤동주라는 한 학생이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는 점을 기억할 수 있었다”며 “본교는 윤동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역사적 교훈으로 깊이 새기며 앞으로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시샤대는 기독교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삼고 있다. 윤동주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를 다닌 크리스천이다. 고하라 총장은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기독교주의와 국제주의를 연계해 인류·국가 간 화합을 적극적인 힘으로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위 수여식은 윤동주 서거 80주기인 오는 16일 열린다.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참석한다. 올해는 학교 주도로 헌화식과 강연 등 80주기 기념행사도 대대적으로 열린다. 이전까지 교내 윤동주 추모 행사는 1995년 교정 내 윤동주 시비 설치를 주도한 도시샤 교우회 코리아클럽(현 도시샤 코리아동창회)이 주도적으로 개최해 왔다. 고하라 총장은 “학위 수여식에 내빈을 따로 초청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한일의원연맹 사무국에서 몇몇 국회의원이 참석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고하라 총장은 기념행사에서 ‘윤동주를 말하다’를 주제로 직접 강연도 한다. 최용훈 도시샤대 상대 학장은 “목사이자 신학부 교수인 고하라 총장은 한국 기독교에 대해 많이 공부한 것으로 안다”며 “강연에선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기독교적 가치 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도시샤대는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윤동주 관련 행사나 한·일 관계 증진 노력을 더 활성화할 계획이다. 도시샤대는 전체 유학생(1375명)의 33.5%가 한국인 유학생(461명)일 정도로 한국과 가까운 학교다. 지정교 추천 입시제도를 통해 한국 고등학교에서 입학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고하라 총장은 “이번 학위 수여를 계기로 (윤동주 관련) 교육과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며 “윤동주가 한·일 간 신뢰와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가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