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외과 전공의를 지망한 하예림(30)씨는 대학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차상위계층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목회자인 하씨 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가정들이 있다’면서 혜택을 포기하곤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의료선교단체 한국누가회(누가회·회장 백인기)가 운영하는 ‘안수현 장학회’였다. 안수현 장학회는 고려대 전공의였던 안수현(1972~2006)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 청년 바보 의사’(아름다운사람들) 수익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하씨는 1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안수현 장학회에서 두 차례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졸업해 전공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외과는 업무 강도가 높아 전공의들 사이에서 비인기과 중 하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전공이라고 생각해 선택했다”며 “환자를 대하는 일이 지치거나 일이 힘들 때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해주시고 내가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내과 전문의였던 안씨는 주변인들로부터 ‘청년 예수’로 불렸던 인물이다. 돈이 없는 환자의 검사비를 대신 내주고 시한부 환자들의 말동무가 됐다. 군의관 시절엔 풀밭에서 사병들과 함께 지내며 부하들의 건강을 먼저 챙겼다. 서른넷 젊은 나이에 신증후군출혈열로 생을 마감했을 때 4000명 넘는 사람이 빈소를 찾았다. 생전에 그가 어린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선생님 덕분에 하나님을 제 마음속에 등불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고백도 있었다.
안씨의 사랑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이어졌다. 안씨 유가족은 책 수익금 전액을 그가 활동했던 누가회에 기부했고 이를 통해 의사를 양성하는 장학회가 설립됐다. 지난 15년간 하씨와 같은 의대생 60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안씨와 함께 누가회에서 사역했고 장학회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이택환(63) 목사는 “안씨가 가지고 있던 앨범에는 환자들이 그에게 써준 감사편지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는 “그와 함께 일했을 때 그가 환자와 후배들에게 보여줬던 따뜻한 성품을 기억한다”며 “그는 환자를 돌볼 때 환자에게 언제든 줄 수 있는 CCM 찬양 테이프를 들고 다녔다”고 전했다.
“소망 없이 잦아들던 한 생명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던 예수님께서 비로소 그 마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주인이 되셨다.” 책에도 안씨가 병원에서 겪은 일화와 신앙을 가진 의사로서 마주했던 고뇌가 녹아있다.
이 목사는 “안수현을 기리며 시작한 장학회가 앞으로도 그와 닮은 후배들을 키워내는 데 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