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한 북한이 금강산 내 남측 자산인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그해 10월 금강산을 찾아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뒤 약 5년 만에 마지막 주요 시설인 면회소까지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정부는 이산가족 상시 상봉의 염원을 담고 있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북한이 철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남북이 합의해 설치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 소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구 대변인은 “이산가족의 염원을 짓밟는 반인도주의적인 행위이며 우리 국유재산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우리 정부가 운영 주체이며 건설 예산에만 총 550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면회소는 관광지역특구 지하 1층에서 지상 12층까지의 본관 건물과 면회사무소동, 경비실 등의 부대 건물로 이뤄져 있다. 2003년 11월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면회소 건설에 합의했고 2005년 8월 착공해 2008년 7월 완공됐다.
이산가족면회소는 완공 직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하면서 개소가 보류됐다. 북한은 2010년 4월 면회소를 동결·몰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1~2층만 임시로 사용됐다. 2018년 9월에는 남북이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이산가족면회소 조기 복구에 합의하기로 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정부는 북한이 지난해 연말부터 철거를 준비하는 동향을 포착했다. 북한은 현재 건물 외벽 타일과 부속건물의 벽체를 허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4월 우리 정부 소유의 소방서 건물을 철거했으며 면회소마저 모두 철거하면 금강산 내 주요 시설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금강산 시설 철거는 김 위원장이 20 19년 북·미 정상회담 실패 후 ‘자력갱생’으로 노선을 전환하면서 이어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금강산을 찾아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고, 202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금강산 관련 시설이 차례로 철거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의 분명한 지시가 있었던 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구 대변인은 “법적 조치, 국제사회와의 협력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라 실질적인 조처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