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52) 암 수술 후 체력 떨어져… 가족들 응원과 기도로 이겨내

입력 2025-02-17 03:03
최경주 장로가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렇게 아이들의 입시를 성공적으로 끝냈고 선수로서 복귀를 위해 훈련 도중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항상 피곤함을 느꼈기에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2017년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수술을 받았고 이후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수술 이후 근육이 빠지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골프 스윙 속도도 현저히 줄었다. 원래는 드라이버 스윙 속도가 109마일(175㎞) 정도였는데 아무리 세게 쳐도 102마일(164㎞)을 넘기지 못했다. 거리는 240~250야드(약 228m)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선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래서 선수들이 은퇴하는구나.’ 그 순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일어설 것인가.’ 나에게 은퇴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단어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근력 강화 운동을 시작했고 먹는 것 하나하나를 조심하며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PGA 투어에서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기에는 여전히 거리 차이가 너무 컸다. 초청 대회에 나가보면 그들과의 격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강했고 나는 예전과 달랐다.

어느덧 PGA 챔피언스 투어에 출전할 나이가 가까워졌다. 챔피언스 투어는 만 50세 이상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무대다. 나는 이 무대를 목표로 삼고 철저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약 2년 동안 꾸준히 훈련하며 내 몸을 다시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 코로나19가 터진 것이다. 한순간에 세상이 멈춰 버렸다. 대회는 취소되거나 연기됐고 연습장과 체육관은 문을 닫았다. 집에서 혼자 훈련을 이어가야 했고 가끔 연습장에 나갈 때는 거리두기를 지켜야 했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홀로 훈련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필드 위에 설 것이다’라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려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 덕분이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세 자녀는 각자의 꿈을 찾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과정을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단순히 가족과의 추억뿐만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한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준비한 끝에 2021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 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 최초의 PGA 챔피언스 투어 우승이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사람들은 “최경주가 부활했다” “KJ가 회춘했다”며 환호했지만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다시 필드 위에서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의 시간,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 그리고 기도 덕분이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