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나도 세 자녀의 아빠가 됐다. 선수로서 한창 활약하던 시절,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어린 시절은 두 번 다시 안 돌아오기 때문에 부모로서 이 시기를 같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나중에 ‘아빠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다니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뭐 해줬냐’와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PGA 투어는 잠시 쉬고 세 아이의 양육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날 큰아들 호준이가 야구를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아빠가 골프 선수인데 야구를 하겠다니 솔직히 당황했다. 야구는 전혀 모르는 영역이었다. “호준아, 아빠는 야구를 모르니까 (못 도와주는데) 골프를 하면 도와줄 수 있지만.” “아빠, 난 야구를 하고 싶어.” 강력한 의견 피력에 아이의 열정을 꺾지 않기로 했다.
아들이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야구를 배운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길이었다. 리틀야구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원정 경기를 다니고 포지션별로 레슨을 받으며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주말마다 야구장을 오가며 파울볼을 잡아줬고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아이를 응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점점 벽에 부딪혔다. 실력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고 감독과 코치들의 부당한 대우도 잦았다. 결국 큰아이는 스스로 야구를 포기하고 골프로 전향하겠다고 했다. 골프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내심 안도했지만, 동시에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골프는 내가 잘 아는 분야였지만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골프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그의 훈련과 대회 준비를 돕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내 연습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큰아이가 대학 골프팀에 들어가게 되자, 나는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막내아들인 강준이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와 달리 막내도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고 결국 나는 다시 야구장을 오가는 삶을 시작했다. 막내와 함께한 2년 동안 주말에는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막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야구 대신 골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두 아이 모두 골프에 집중하게 됐다.
아이들을 위해 보낸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호준이와 강준이가 각각 다른 시기에 야구와 골프를 병행하며 보낸 시간만 해도 거의 6년이었다. 그동안 내 선수 생활은 자연스럽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PGA 투어에서 계속 활동하던 내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왜 최경주가 경기에 나오지 않느냐며 여러 가지 추측을 했지만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는 결정이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