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아플 일이 있었다. 이틀간 입원하고, 집에서 일주일을 쉬었다. 환자가 되면 세상만사 크고 작은 불만이 사라진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2인실 침상 옆자리에 언제 입원했는지 모를 암 환자를 보면서 머리를 어지럽히던 여러 고민이 금세 잦아들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복도 쪽 침상을 배정받았을 때 작은 불평이 있었다. 괴로운 입원 기간 바깥 풍경이라도 즐겼으면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고통으로 잠시도 편안한 상태를 누리지 못하던 옆 환자를 알게 되고, 그와 보호자가 창가석을 선점한 일은 금방 불만거리에서 사라졌다.
더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듯 보였다. 옆 환자 딸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내게 음료수를 건네면서 “밤엔 더 시끄러울 수 있다”며 미안해하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 역시 구역질을 할 정도로 아팠지만, 내 통증엔 기한이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입원 기간 잘 쉬며 회복하는 것이 내게 필요했지만, 더 아픈 사람 앞에서 그저 사치였다. 수술을 앞두고 눈을 감고 기도할 적엔 옆 환자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옆 환자 곁에는 배우자 자녀 자매 등 가족이 늘 함께했다. 저녁 순번을 맡은 건 딸이었는데, 커튼 너머로 살뜰히 돌보는 것이 다 느껴졌다. 그의 유일한 행운처럼 여겨졌다.
이틀밖에 되지 않는 내 병원 생활 동안 공교롭게 간병인이 없었다. 입원 전날 남편이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괜한 걱정을 줄까 봐 친정 식구에게 입원을 미리 말하지 않았기에 갑작스레 연락이 꺼려졌다.
‘수술 당일은 수발을 드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의 걱정, ‘가족은 안 오시냐’며 여러 번 묻는 간호사의 질문이 날 불안하게 했다. 결국 나 홀로 병원 생활을 마쳤지만, ‘경증이기에 망정이었다’ ‘옆 환자처럼 아픈데 수발 들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병간호해줄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서러울까 싶었다. 경제적 여유가 돼서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아픈 자신을 돌봐줄 간병인을 쓰려고 척척 돈을 낼 처지가 못 된다.
‘간병인이라도 알아보라’는 친구의 조언에 나도 선뜻 그러지 못했다. 온라인 매체인 데이터솜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3년 7월 발표한 간병 인식 설문조사에서도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응답자 1000명 중 27%만이 ‘나와 가족이 간병이 필요할 때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병간호는 배우자나 자녀가 한다는 인식이 강한 탓인지 미혼인 지인들이 간병비를 빵빵하게 보장해 주는 보험을 필수로 든다고 한다. 피붙이에게 간병의 짐을 지우는 것이 정당한지도 모르겠지만, 가족을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정서 탓일 거다.
나의 아버지는 10년을 앓으시다 돌아가셨다. 뒤치다꺼리를 아내이자 내 어머니가 모두 했다. 형제가 비교적 많았지만, 병간호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종종 했다. 요양원에 모시고 싶지 않다던 어머니는 집과 병원에서 아버지를 보살폈다. 무슨 이유에서든 어머니가 간병을 못 하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누구에게나 맘껏 아플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부르면 대답할 만한 거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징징대고,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를 최소한 들었으면 좋겠다. 가족 없이 외로운 환자 곁을 SNS에서 모집한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지키는 장면을 한 의학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픈 사람을 돌보기 위해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