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사이버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이버 공간이 형성되고 일반 국민의 참여가 늘어나게 됐다. 당시에는 사이버 공간이라고 해봐야 게시판을 이용해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느꼈고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결국 이러한 공간과 활동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기도 하고 억눌린 것에 대한 저항도 이뤄졌다.
사이버 민주주의는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개인적으로 볼 때 권위적인 관료주의 타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억울함을 당해도 어디에 호소할 수 없었던 개인들은 게시판을 적절히 사용해 그 부당함을 알릴 수 있었다. 그 결과 권위적이었던 공무원들의 태도는 아주 급격히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소비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배경이 됐다. 기업이나 가게 등에서 부당함이나 불친절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결코 참지 않았고, 게시판이나 SNS 등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그러한 의견을 볼 때면 외면하지 않고 호응했다. 때론 불매운동으로까지 발전하며 한 기업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사회의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는 많이 개선됐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사이버 민주주의는 20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 매체의 변화가 있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이 될 때 그는 이러한 일에 능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이끌었다. 덕분에 그는 정치 이력이 짧음에도 단숨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4년 후 그는 조 바이든에게 패했다. 절치부심한 트럼프는 4년 후 규제가 있는 트위터 대신 자신이 직접 만든 ‘트루스소셜’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모든 규제와 통제를 벗어난 행보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2013년 대통령 선거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카카오톡을 이용한 여론 형성에 성공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대급부였는지 젊은 세대들이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를 통해 여론 형성에 성공했다. 이후 2022년에는 유튜브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유튜브는 모든 이의 참여가 가능하다. 특별한 장비나 조직 없이 휴대폰 하나만 가져도 방송을 할 수 있다. 어떤 기관의 허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통제를 받을 필요도 없다. 단지 하나 조회수가 결과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자극적일 수밖에 없고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돈다. 정치가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일어났다. 과거는 정치인들이 대중을 설득하고 움직이기 위해 인터넷 도구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정치인들이 인터넷 여론에 휘말리고 있다. 주체가 유튜버들이다. 그들에 의해 설득되거나 선동된 대중이다. 이는 정말 특별한 모양을 만들었기에 ‘유튜브 민주주의’라고 할 만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까지 더해지며 유튜브 정치는 과열되고 있다. 특별한 것은 이러한 일이 현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사이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수십만, 수백만명을 모으고 있다. 그만큼 폭발력을 가졌다.
매체가 발달하며 사람들의 참여는 더욱 넓어지고 활발해졌다. 그런데 유튜브 민주주의는 사이버 민주주의보다 더 나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큰 절망을 맛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깊은 수렁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목회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