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째듯한 달’ 보듯이 크고 환한 마음으로

입력 2025-02-14 00:32

“육보름으로 넘어서는 밤은 집집이 안간으로 사랑으로 웃간에도 맏웃간에도 누방(다락방)에도 허청(헛간)에도 고방(광)에도 부엌에도 대문간에도 외양간에도 모두 째듯하니 불을 켜놓고 복을 맞이하는 밤입니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하며 백석의 산문 몇 줄을 옮겨 본다. ‘째듯하다’라는 단어가 생소하여 뜻을 찾아보니, ‘빛이 선명하고 뚜렷하다’라는 형용사란다.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째듯한 달’ 보듯이 크고 환한 마음으로 소망을 빌어 본다. 정월대보름은 참 신비롭고 귀여운 풍속이다. 대보름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 더위 사라”고 농하며 더위팔기를 하니까 말이다. 몇 가지 유년의 기억도 푸근히 떠오른다.

정월대보름 아침이면 아버지가 분유 깡통에 깡! 깡! 못을 치는 소리로 소란했다. 구멍 난 깡통에 긴 철사줄로 손잡이를 달고, 그 안에 소나무 조각이나 오래 태울 것을 넣었다. 불깡통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아이들과 불깡통을 휘휘 돌리며 놀다 보면, 콧구멍에 그을음이 까맣게 묻어났다. 옷이며 머리카락에도 불내가 뱄다.

어른들은 달집을 높이 태우며 술과 음식을 나누고, 나는 친구들과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복밥을 얻어먹으러 다녔다. 밤늦게 쏘다녀도 혼나지 않는 날이었다. 친구 엄마는 귀찮은 내색 없이 오밤중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밥상을 차려 주셨다. 아이들은 고사리와 호박고지, 오곡밥 따위를 들기름에 잰 김에 싸서 먹었다. 달게 밥그릇을 비우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위가 약한 편이라 많이 먹지 못했다. 하지만 불깡통을 빙빙 돌리다 보면 어느 결에 체기가 가셨다. 빨리 돌릴수록 불길이 거세졌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불깡통을 던지는 것이었다. 호를 그리며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불깡통은 유성처럼 찬란했다. 불깡통은 크게 한숨을 쉬듯, 푸시식 소릴 내며 꺼졌다. 마치 우리들의 생처럼 환하고 짧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