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27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칠팔십대 할머니들이 문해학교에서 한글을 깨친 뒤 시를 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2019년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 그리고 김 감독이 3년간 영화를 찍으며 얻은 깨달음과 할머니들의 시를 담은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을 토대로 만들었다.
뮤지컬은 칠곡 할머니들의 실화를 재구성해 가상의 팔복리 문해학교에 다니는 네 할머니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어린 시절 가난과 성차별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던 할머니들이 시를 쓰며 인생의 재미를 찾는 모습은 관객에게 행복의 의미를 일깨운다. 특히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교복을 입고 소풍을 떠나는 장면은 뭉클함을 준다. 여기에 칠곡 할머니들의 시가 뮤지컬 넘버의 가사로 재탄생한 것도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2022년부터 개발되어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이번 작품은 창작뮤지컬 ‘마리 퀴리’ ‘팬레터’ 등을 제작한 강병원 프로듀서를 필두로 오경택 연출가, 김혜성 작곡가, 김하진 작가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강 프로듀서는 “칠곡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감동을 받았다. 또한 다큐멘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깨트렸다”고 작품 제작 계기를 밝혔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의 개막을 앞두고 수도권의 여러 문해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신청했다. 이번 작품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김재환 감독은 “칠곡 할머니들이 태어나 처음 본 영화가 ‘칠곡 가시나들’이었다. 사랑하는 할머니들께 당신들의 이야기로 태어난 첫 뮤지컬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는데 이젠 하늘나라에서 보시게 됐다”고 애틋한 소감을 전했다.
연극 ‘애나엑스’(~3월 16일까지 LG아트센터 U+스테이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로 국내에도 알려진 애나 소로킨의 충격적인 사기극을 소재로 했다. 러시아계 독일인인 소로킨은 201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부유한 상속녀 ‘애나 델비’ 행세를 했다. 탁월한 패션 감각과 언변을 가진 데다 SNS로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 소로킨은 상류층과 친분을 쌓으며 사교계 스타가 됐다.
지인의 돈으로 호화롭게 생활하던 소로킨은 예술 재단 설립 명목으로 서류를 위조해 은행 대출을 받으려다 발각된다. 이어 그동안의 거짓이 드러나면서 검찰에 기소된 그는 2019년 절도와 사기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로 복역해 수감 3년 만에 가석방됐다. 참고로 그는 현재 TV쇼에도 출연하고 있으며 SNS 금지 해제 조치로 게시물도 활발하게 올리고 있다.
연극 ‘애나엑스’는 2021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돼 호평받은 2인극이다. 애나와 그의 애인이 된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 아리엘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장면에 따라 다른 배역도 연기한다. 무대는 의자 두 개와 함께 스마트폰들을 세워 놓은 듯한 대형 배경 화면 및 조명으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기자 출신 극작가 조셉 찰턴이 쓴 희곡은 실화를 그대로 옮겨놓는 대신 SNS 시대에 애나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뒤틀린 욕망과 허상에 중점을 뒀다.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고 이를 통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가 그려진다. 김지호 연출가는 “이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왜 애나 같은 인물이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면서 “SNS 중독을 강요받는 시대에 ‘진짜 나’와 ‘보이는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지는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