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진 기자의 끌림] ‘자살률 1위’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들

입력 2025-02-15 00:22
‘자살 명소’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서울 마포대교 난간의 자살 예방 문구. 뉴시스

한 달 전 한때 알고 지냈던 지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인 아버지의 부고 알림이었다. 사회에서는 평범한 20대 여성 직장인, 교회에서는 사역과 청년부 임원을 도맡아 열정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그는 하루 아침에 자살 유족이 됐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 한마디 못한 채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을 예고 없이 떠나보낸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우리 아빠 지옥 가면 어떡해”였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여전히 입에 올리기 꺼리는 주제이자 금기어 취급을 받기 일쑤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자살을 죄악시하면서 성도인 유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풍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978명이었다. 하루에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자살은 한 사람의 생을 마감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지인들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자살 유족은 극심한 슬픔과 죄책감과 분노와 혼란 등 수많은 감정에 시달린다. 동시에 자살 고위험군이 된다.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살 위험이 3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자살 유족에 관한 관심과 지원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유족 대다수는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손실로도 이어진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6조5000억원에 달한다.

자살 유족 돌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 경제적 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 등 다각도로 이뤄져야 한다. 사회가 직면한 이 과제는 한 개인이나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민간, 종교계 등 사회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자살 하면 지옥 간다’는 낙인찍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픔을 경험한 유족을 향해 비난과 정죄 대신 영적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고 인식개선 활동과 상담을 통해 교회 내 유족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자살예방 정책을 강화하고 예산 확대, 자살 유족을 위한 센터 설립 등을 통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을 더는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 구성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목회자를 비롯한 성도들은 자살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웃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교회는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정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민단체는 인식개선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할 때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삶의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서로를 돌보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자살 예방을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가 모두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자살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 사라진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기독교 신앙에서 생명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 매년 1만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