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칩 개발에 힘쓰고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 메타는 한국의 AI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 퓨리오사AI 인수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칩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메타가 국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에 대한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퓨리오사AI는 데이터센터용 AI 추론 반도체를 설계하는 업체로, 삼성전자 출신 백준호 대표가 2017년 창업했다. 퓨리오사AI는 2021년 첫 AI 칩으로 신경망처리장치(NPU) ‘워보이’를 출시했고, 지난해 8월 2세대 제품 ‘레니게이드’(RNGD)를 선보였다. RNGD는 고성능 AI 모델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추론용 반도체다. 같은 해 10월 퓨리오사AI는 공식 웹사이트에 “거대 테크 기업들이 RNGD에 대한 샘플링(시제품 작업)을 시작했다”며 납품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타가 퓨리오사AI 같은 한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인수를 검토하는 이유는 자체 칩 개발 속도를 올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가 AI 학습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면,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 등 국내 팹리스는 추론에 특화된 NPU에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리벨리온에 이어 차기 AI 반도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으로 거론된다.
퓨리오사AI 입장에서는 메타에 인수되면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기대할 수 있다. 앞서 메타는 AI와 데이터센터 사업에 최대 650억 달러(약 94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퓨리오사A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국산 AI 칩 개발을 위한 ‘K-클라우드 프로젝트’의 주요 참여사다. 과기정통부는 메타와 퓨리오사AI 간 인수 논의 내용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퓨리오사AI 측은 인수 협상 보도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메타뿐 아니라 오픈AI, 구글 등도 자체 칩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픈AI는 수개월 내 자체 AI 반도체 설계를 마치고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대만 TSMC에 생산을 의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오픈AI는 미 반도체 설계 기업 브로드컴과 AI 칩을 개발 중이며 내년 생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은 자체 개발한 AI 칩 텐서처리장치(TPU)를 자사 AI 모델 제미나이 학습에 사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카카오가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에 구글의 최신 TPU ‘트릴리움’을 활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딥시크도 저비용·저전력으로 고성능 AI 구현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엔비디아 GPU보다 저렴한 칩을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