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중심 공급망 깨지나… 업계, ‘주문형 반도체’에 기대

입력 2025-02-13 01:10

반도체 업계는 빅테크가 자체 인공지능(AI) 칩 생산에 나서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기존 엔비디아 중심의 공급처가 다양해질 수 있어서다. 범용 반도체가 아닌 주문형 반도체(ASIC)를 활용하면 효율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빅테크 수요는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고대역폭메모리(HBM)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문형 반도체가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 공급에 애를 먹고 있는 삼성전자의 기대가 크다. 빅테크의 AI 칩 생산이 본격화하면 HBM 수요처가 늘어나 엔비디아 이외 기업으로 공급 다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6세대 HBM인 HBM4부터는 주문형 반도체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주문형 반도체가 HBM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6년 5%에서 2028년에는 30%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문형 반도체 수요가 연평균 245%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HBM 매출은 강한 수요 기반으로 전년 대비 100%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며 “ASIC 기반의 고객 수요가 의미 있게 증가하며 고객이 확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주문형 반도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력 소비와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산구조를 간소화해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전력 소비도 줄이는 AI 칩 설계를 구상하고 있다. AI가 고도화하면서 작업 용도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범용 반도체는 이 같은 작업에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독자적으로 자체 AI 칩에 최적화된 형태를 요구하기 때문에 범용 HBM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주문형 반도체 시장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예상보다 빅테크 기업의 AI 칩 자체 생산 속도가 더뎌 주문형 반도체 시장 개화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문형 반도체는 기업 성격에 특화된 칩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 지식을 보유한 인력이 필요하고, 오랜 기간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자체 AI 칩 개발을 발표한 오픈AI의 생산 시점도 불투명하다. 테스트를 문제없이 통과하면 내년쯤 생산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생산 시점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