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恩田陸)는 1991년 소설 ‘여섯 번째 사요코’ 이후 미스터리, 공포, 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낸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2017년 일본 문학사상 최초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한 ‘꿀벌과 천둥’이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천재적인 발레리노이자 안무가다.
주인공은 요로즈(萬) 하루(春). ‘만 개의 봄’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소설 속 화자는 “인간에게는 기껏해야 백 개의 봄밖에 찾아오지 않는데, 녀석은 이름에 만 개의 봄을 지니고 있다”면서 천재성을 눈치챈다. 제목 ‘스프링’은 “가냘프지는 않고 뼈대는 굵은” 하루의 스프링 같은 몸과 춤 동작의 역동성을 상징하면서 ‘봄’의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소년 하루가 세상과 만나 프로 안무가로 예술의 꽃을 피워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장마다 화자를 달리하는 구조이다. 처음 세 개의 장은 하루의 발레 학교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후카쓰 준, 하루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천재성을 숭배하고 자신을 ‘교양 담당’이라 부르는 외삼촌 미노루, 문자 그대로 ‘뮤직’을 통해 영감을 주는 하루의 ‘뮤즈’인 작곡가 다키자와 나나세의 시선으로 하루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지막 장은 하루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한다.
크게 보면 각각의 장은 시간상으로 다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첫 장 ‘후카쓰 장’은 15세였던 하루와 준이 발레 워크숍에서 만나서 함께 무용가로 성장하다 하루가 안무가의 길로 들어서는 초기를 다룬다. 두 번째 ‘미노루 장’은 하루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고, 세 번째 나나세 장은 프로 안무가가 된 뒤의 이야기다. 서로 겹치는 에피소드들도 숨어 있는데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읽다 보면 처음 3개의 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의문이 하루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해소되기도 한다. 하루는 외톨이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로 비친다. 천재성의 발로로 해석되지만 하루가 전하는 실상을 통해 양성애(兩性愛)적 정체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문체도 각각이다. 나나세가 서술하는 장면들은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경쾌하지만 미노루 삼촌의 전하는 하루의 모습은 기록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도로 계산된 치밀한 구조를 통해 하루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 속에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무용 작품들이 등장한다. 준에게 선물한 ‘야누스’, 나나세와 함께 작업한 ‘어새슨’, 독창적으로 해석한 라벨의 춤곡 ‘볼레로’ 등 무수히 많다. 동작 하나하나에 생명감을 부여하는 섬세한 묘사는 눈앞에서 무대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소설 읽기의 여정을 마치고 나면 장르를 불문하고 경지에 오른 순간, 모든 예술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작가는 하루의 입을 통해 “탁월한 음악가 혹은 무용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은 하나의 음, 하나의 동작에 담긴 압도적인 정보량이다. 그들의 소리와 동작에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 예술가가 품고 있는 철학과 우주가 응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루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을 ‘발레의 신에게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으로 해석한 첫 공연. 무아지경의 장면은 예술의 극치다. “이제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춤 자체가 되어 있다. 춤추고 있다는 자각조차 사라지고, 몸의 윤곽만 남은 상태로 에너지가 세포막을 넘어 안팎으로 휙휙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자유자재로 오간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