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나를 훈련시킨건 할머니와의 카드게임”

입력 2025-02-14 00:00 수정 2025-02-14 00:00
빌 게이츠의 첫 번째 회고록 ‘소스 코드’는 그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창업 초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고교 과정의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스쿨 재학 시절 하이킹에 나선 게이츠. ⓒLakeside School Archives

빌 게이츠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년 후에나 이뤄질, 어쩌면 아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획기적인 도약을 모색하는 일에 쓰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 그도 점점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가 됐다. “기억을 하나씩 꿰맞춰”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번 회고록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세계 최대의 개인용 컴퓨터(PC) 소프트웨어 회사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군 게이츠는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창업 초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이츠는 “어른이 되어 깨달은 경이로운 한 가지는 세월과 배움을 모두 걷어 내고 보면 나라는 존재의 많은 부분이 이미 처음부터 갖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하나씩 걷어 내면 여덟 살 때 외할머니와 테이블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길 열망하는 어린아이”가 남는다. ‘가미’로 불리는 게이츠의 외할머니는 카드 게임을 좋아하고 무척 잘했다. 누구도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승리 비결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은 여덟 살 때였다. 그전까지는 운이라고만 생각했지만 할머니의 승리는 두뇌를 훈련시킨 결과였다. 그렇다면 어린 게이츠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할머니는 게이츠에게 “머리를 쓰면 돼, 영리하게 생각하면 돼”라고 말하곤 했다. 5년 정도 걸렸지만 결국 게이츠는 꾸준히 이기기 시작했다. 그의 깨달음은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결론이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은 책이었다. 게이츠는 “독서를 통해 온갖 종류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식한 독자’의 본보기는 외할머니였다. 언제나 게이츠의 독서를 응원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까지 게이츠를 데려갔고, 항상 차에는 한 주 동안 읽을 새 책이 잔뜩 실려 있었다. 게이츠는 스무 권짜리 1962년 판 ‘월드북 백과사전’을 A부터 Z까지 거의 모두 읽었다. 아홉 살 무렵이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에는 적응을 못 했다. 그에게 강요하는 규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 수학은 달랐다. 언제나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는 확실성이 좋았다. 그는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므로 내가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면서 “숫자를 잘 다루는 능력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심지어 안정감까지 느끼게 했다”고 말한다.

집안에서 ‘규칙의 제정자이자 집행자’였던 엄마는 반항의 주요 대상이었다. 온화하고 언제나 중재자였던 아버지도 참다못해 물컵으로 물을 끼얹었다. 그때 게이츠의 반응은 “샤워, 고맙네요”였다. 그는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상담 클리닉을 운영하던 찰스 크레시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게이츠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부모님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세상에 나가면 필요하게 될 기술을 습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크레시 박사는 부모에게도 강요하지 말고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라고 권했다. 게이츠는 “부모님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아들이 다른 부모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면서 “두 분의 사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에 빠져 있던 모습. ⓒLakeside School Archives

인생의 전환점은 레이크사이드스쿨 기간이었다. 중고교 과정의 사립 학교로 ‘규칙이 거의 없는 학교’였다.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은 자유로운 교육 실험을 했다. 그때 학교에서 전화선으로 접속해 컴퓨터를 나눠 사용하는 이른바 시분할(timesharing) 방식으로 컴퓨터를 도입한다. 게이츠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순간이었다. 다트머스대의 교수 두 명이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식(BASIC)을 내놓은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베이식에 매료된 게이츠는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프로그래밍은 마치 수학의 증명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는 “프로그래밍에는 논리적 사고와 장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등 나에게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기술의 조합이 요구됐다”면서 “또한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끊임 없는 욕구를 자극했다”고 말한다. 이때 MS를 공동 창업한 2년 선배 폴 앨런과 친해졌다. 텔레타이프 임대료와 컴퓨터 사용료 등 막대한 비용 문제 때문에 학교에서 더 이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게이츠는 ‘C-큐브드’라는 벤처 회사에서 앨런과 함께 일하며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를 이어갔다. 게이츠는 한밤중에 집을 몰래 빠져나가 마음껏 프로그램을 코딩할 수 있었다.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하며 소프트웨어 분야의 대표적 사례로 게이츠를 꼽는다. 게이츠는 “처음에 500시간이라는 그 행운의 컴퓨터 무료 이용 기회가 없었더라면 다음 9500시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초기의 빌 게이츠(왼쪽)와 폴 앨런. ⓒBarry Wong/The Seattle Times

책의 뒷부분은 하버드대에 입학한 게이츠가 중간에 학업을 그만 뒤 MS를 창업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게이츠는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삶을 사는 것 같았고 즐거웠다”면서 MS를 운영하던 시절의 두 번째 회고록과 현재의 삶과 게이츠 재단의 활동을 조명하는 세 번째 회고록을 예고했다.

⊙ 세·줄·평 ★ ★ ★
·게이츠는 참으로 운이 좋은 아이였다
·위대한 인물의 시작은 항상 어린 시절이었다
·자유를 보장하는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