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은행·증권·보험사 등 금융사들의 수수료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가입자들은 수수료만 내는 셈이다. 국내에선 가입자가 금융사들과 직접 계약하는 ‘계약형’ 퇴직연금만 운용 중인데 금융사만 배불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처럼 별도 조직이 적립금을 관리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비교공시’ 자료에 따르면 가입자가 금융사에 건네는 총수수료는 계속 늘고 있다. 2018년 8860억4800만원이었던 수수료는 지난해 1조6840억5500만원에 달했다. 적립금에서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덜게 되어 있어 적립금이 불어날수록 수수료 수입도 증가하는 구조다. 하지만 2023년 말 기준 10년간 퇴직연금의 연 평균 수익률은 2.07%에 불과하다. 2023년 물가 상승률 3.6%를 감안하면 실질수익률은 마이너스인 셈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들이 비슷한 기간 5% 안팎의 수익률을 달성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문제는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 중 근로자 일반 대상의 기금형 퇴직연금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처럼 투자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조직이 적립금을 관리하면서 투자하거나 금융사들을 상대하도록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검토했다. 가입자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익률 증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퇴직연금이 발달한 서구 국가는 기금형만 운용하거나 기금형과 계약형을 함께 운용하는데 둘 다 운영할 경우엔 기금형 가입자가 훨씬 많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강제로 보험료를 내게 되어 있어 사실상 공적 연금과 마찬가지인 만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금형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시기상조라며 그동안 기금형 도입을 반대해온 금융사들의 퇴직연금 수수료 비율을 수익률과 연동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들의 안정적 노후자금을 위한 것이니 근로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