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외면에 환경규제까지 ‘쏟아지는 단종차’

입력 2025-02-13 01:13
모빌리티 패러다임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대전환하면서 요즘 완성차업체는 어느 때보다 많은 차량을 단종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퇴출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가져온 결과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호하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경쟁력을 잃은 세단도 하나둘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기아 SUV 모하비

기아는 지난해를 끝으로 대형 SUV 모하비를 단종했다. 현재 공식 홈페이지엔 모하비를 소개하는 내용이 사라진 상태다. 2008년 출시 이후 17년만이다. 모하비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기아 사장이던 시절에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한 차량이다. 국산 SUV 가운데 배기량이 가장 큰 3ℓ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크고 강인한 차량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워너비’ 차량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배출가스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업계에서는 기아가 모하비 생산을 중단한 가장 큰 이유로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 유로7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꼽는다. 디젤 차량은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전환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량을 유지했다면 내연기관 엔진을 전기모터로 대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었겠지만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모하비 판매량은 2022년 1만1485대에서 이듬해 4833대, 지난해 2360대로 급감했다. 결국 기아는 모하비의 생산라인을 지난해 한국 ‘베스트셀링카’에 오른 쏘렌토와 첫 정통 픽업트럽 타스만으로 전환했다.

미니 클럽맨

BMW그룹의 소형차 브랜드 미니는 지난해 ‘클럽맨’을 단종했다. 1969년 출시 이후 55년만이다. 클럽맨은 전 세계 누적 판매량 110만대를 돌파한 차량이다. 전동화 브랜드로 전환하기 위한 수순의 일환이다. 미니는 클럽맨을 대신하는 소형 전기 SUV ‘에이스맨’을 오는 4월 공개할 계획이다.

포르쉐는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한 ‘718 박스터’ 생산을 중단한다. EU의 안전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신 전기차 모델로 전환해 재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포르쉐의 중형 SUV 마칸도 내연기관차의 엔진을 전기차의 모터로 교체해 올해 국내 출시 예정이다. 닛산 GTR은 EU 규제에 막혀 17년 만에 북미와 유럽에서 단종한다.

SUV 선호도가 빠르게 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세단도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아의 준중형 세단 K3가 지난해 9월 한국 시장에서 퇴장했다. 2021년 2만6307대에 달했던 K3 판매량은 지난해 1만267대로 1만대 선을 겨우 넘겼다. 이제 한국 시장에 남은 준중형 세단은 현대차 아반떼가 유일하다. K3가 떠난 자리는 올해 출시 예정인 전기차 EV4가 대체한다.

르노코리아 SM6

르노코리아는 2016년 출시 당시 주목받았던 대형 세단 SM6의 생산을 지난해 11월 완전히 중단했다. 판매량 감소가 원인이다. 같은 달 쉐보레는 중형 세단 말리부를 단종했다. 1964년 출시 후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판매된 차량이다. 그러나 최근 SUV에 밀려 입지가 좁아졌다.

폭스바겐은 중형 세단 파사트와 아테온의 생산을 중단하고 다른 전동화 후속 모델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마세라티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준대형 세단 기블리의 단종을 알렸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강화하는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차량이 무대에서 줄줄이 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