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번스)가 아니야.”
사건에서 손 떼라며 대통령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가 던진 한마디가 샘 윌슨(앤서니 매키)의 뼈를 때린다. 스티브로부터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비브라늄 방패를 물려받고 새 캡틴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샘에겐 아직 확신이 없다. 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슈퍼 솔저 혈청을 안 맞은 샘은 다른 슈퍼히어로들처럼 슈퍼 파워가 없다. 맞으면 아프고, 심하게 다치면 죽을 수도 있다.
2세대 캡틴 아메리카를 처음 주인공으로 한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2일 개봉했다. 희소 자원인 아만티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국제사회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샘은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거는 특수 능력으로 세상을 장악하려는 악당 새뮤얼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가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마블의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달리 평범한 인간인 샘이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영화는 그린다. 미국 대통령인 새디우스를 살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초대 슈퍼 솔저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도 구해야 하고, 아만티움을 사이에 둔 미국과 일본의 전쟁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패기 넘치게 적들을 추격하다가도 방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샘은 끊임없이 스스로 되묻는다. “슈퍼 솔저 혈청을 맞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샘이 캡틴 아메리카가 되면서 새로운 팔콘이 된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 역시 같은 고민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캡틴 아메리카’는 한 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초인적인 능력이 없는 샘은 칼, 벽돌 등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해 상대방에게 맞선다. 샘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수트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샘은 수트에 장착된 강력한 비브라늄 날개와 방패를 주 무기 삼아 공중전과 지상전을 펼친다.
스턴스의 계략으로 감마선을 넣은 알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 온 새디우스는 결국 레드 헐크로 변신한다. 백악관을 부수고 나온 레드 헐크가 벚꽃이 휘날리는 가운데 캡틴 아메리카와 싸우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새디우스를 연기해 온 배우 윌리엄 허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올해 82세인 해리슨 포드가 이 역을 이어받아 근육질의 슈퍼히어로를 소화해냈다.
다만 오락영화로서 관객들에게 ‘도파민 터지는’ 구간은 길지 않다. 통쾌하게 빌런을 쓰러뜨리는 장면보단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인물들의 고뇌,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괴로워하는 로스의 모습 등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드라마의 비중이 높아 전개는 다소 늘어진다. 온 세상을 부술 듯 날뛰던 레드 헐크도 딸 베티 이야기에 즉각 새디우스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린다.
마블의 세계관을 꿰고 있지 않은 관객에겐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 나왔던 새디우스, 시리즈물인 ‘팔콘과 윈터솔져’에 등장한 이사야 등의 캐릭터가 생소할 수 있다. 러닝타임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