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일본 도쿄 이다바시역 인근의 한 빌딩 5층에 멈춘 승강기 문이 열리자,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인 대화가 들리는 사무실이 나타났다. 한국자살유족협회(회장 강명수)와 일본 전국자살유족종합지원센터(전국센터·대표 시미즈 야스유키) 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였다.
두 단체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을 돕고 이들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가족의 자살이라는 충격의 긴 터널을 지나 세상으로 힘겹게 나온 유가족들도 이날 만남에 동행했다. 동병상련의 시련을 가진 이들에겐 언어 장벽은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한국자살유족협회 관계자들이 일본을 찾은 건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 앞서 이 기록을 가졌던 건 바로 일본이었다.
시미즈 야스유키 라이프링크 대표는 2004년 전국센터를 설립하고 일본 전역의 자살 유족과 민관 협력을 통해 2006년 ‘자살 대책 기본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법 제정 후 3년만에 일본의 자살률은 30% 이상 감소했다. 이후에도 전국센터는 자살유족의 회복을 돕는 활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자살유족협회 관계자들은 이번 방문을 통해 전국센터가 획기적으로 일본의 자살률을 낮췄던 경험을 배우고 단체간 교류 확대의 기회를 마련했다.
마츠카와 아키코 전국센터 이사는 민간 주도의 모임과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국센터는 ‘와카치아이노 카이(나눔의 모임)’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임은 자살자 유족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면서 심리 치유를 하고 있다. 정신건강 및 법률 전문가와 사회복지사 등을 연결해 유족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츠카와 이사는 “유족들이 자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유족들은 자신의 아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길 꺼리지만 이런 모임을 통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서로 위로하며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 혼자만 가까운 사람의 자살로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임에 참여하면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점차 회복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 자조 모임을 통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유족과 깊은 연대를 맺으면서 일상을 되찾은 사례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명수 회장은 “20여년 전 자살률 1위였던 일본의 자살 유가족 지원 단체를 방문해 이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면서 “앞으로 두 단체가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고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과 유족 지원 활동을 확대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자살유족협회는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 ‘자작나무’ ‘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등 자살 유가족 지원 활동을 하는 14개 단체가 연합해 지난달 출범했다.
도쿄=글·사진 유경진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