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생명보다 중한 것? 없다!

입력 2025-02-13 00:37

527명. 지난해 일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초·중·고등학생의 수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전년 대비 14명 늘어난 수치이자 사상 최대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선을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면 참담함이 더 커진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4 청소년(9~24세) 통계’에서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조사가 시작된 2011년부터 부동의 1위다. 우려스러운 점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집계된 잠정치(1만3271명)가 이미 2023년 같은 기간의 수치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다.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콘텐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구독자 349만여명 달하는 유명 계정의 섬네일은 ‘자살 사망자 수 역대 최고치 전망’을 제목으로 띄웠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 아래 달린 부제목 ‘그런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였다.

유튜버는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과거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인도의 스모그 문제’를 소환했다. 2023년 11월 게재된 뉴욕타임스 기사를 찾아봤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사진부터 충격적이다. 야외공원에 매트를 펼친 사람들이 자욱한 스모그 사이에서 요가를 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매년 160만명 이상이 오염된 공기로 인해 사망할 정도의 극심한 스모그 속에서도 “야외 운동을 포기하는 것은 독을 마시는 것보다 나쁜 선택”이라고 말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을 보며 ‘기괴하다’는 표현을 남긴다. 인도의 정치인들은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 집중할 뿐이다. 자살 문제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대한민국 국민과 정치적 현실이 평행이론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시선을 다시 일본으로 돌려보자. 주요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청소년 자살의 배경에 학업 문제, 따돌림, 인간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한 경쟁과 승리에 몰두하는 사회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는 누구도 해선 안 되는 것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실수는 곧 회복할 수 없이 패배로 직결된다고 받아들인다.

육아휴직 시절 겪었던 하루를 떠올려본다. 아들의 어깨는 아침부터 잔뜩 움츠러져 있었다. 그럴 만했다. 생애 처음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는 날이었다. 콩쿠르 현장 한편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얘기했다. “아빤 네가 무대에서 실수를 했으면 좋겠어.” 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무대에서 실수를 하고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마무리하는 건 그보다 훨씬 대단한 경험이 될 거야.”

몇 분 후 무대에 오른 아이는 크게 한숨을 쉬곤 거침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부담을 떨쳐낸 듯 리허설 때보다 한결 유려한 타건(打鍵)이 이어졌다. 연주곡이 절정으로 향하던 그때 코드가 뽑힌 컴퓨터마냥 건반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들이 멈췄다. 1초가 10년처럼 느껴졌을 그 순간 아이의 손가락은 차분하게 다음 마디를 찾아갔다. 그날 그렇게 아이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경험치 하나를 획득했을 거다.

세상이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더라도 부모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말 대신 “너무 힘들었겠다. 괜찮아. 다음엔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생명보다 중한 것은 없다. 학업도, 성공도, 명예도 결국은 생명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최기영 미션탐사부 차장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