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기 화성에 위치한 이지에스(EGS)의 소화기 제조 공장. 757㎡(약 229평) 규모의 공장에는 직원 세 명이 근무 중이었다. 단출하지만 한 달에 2.5ℓ 소화기 3000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안에는 소화기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공장 한쪽에는 소화용액을 혼합하는 대형 교반기(재료를 섞는 기계)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소화용액이 주입되기 전의 은색 빈 소화기 통 10여개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소화기 제조 과정은 단순하다. 소화용액을 용기에 채운 뒤 밸브 손잡이를 조립하고, 질소를 주입하면 끝난다. 이후 압력 측정 기기에 맞춰 질소를 주입하고 가스 누출 여부를 확인하면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질소를 넣는 이유는 압력 차이를 이용해 소화용액이 원활히 분사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지에스그룹의 판매사인 EGS플러스 이병관 대표는 “소화기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핵심 기술은 결국 소화용액에 있다”고 말했다.
EGS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제품은 ‘ABC 액상 소화기’다. 화재는 크게 5가지 종류(A·B·C·D·K급)로 나뉘는데, 이 중 A·B·C급 화재에 모두 유효하다는 뜻이다. 현재 소방청의 형식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소화기는 국가공인인증기관에서 안전과 성능을 인정받아야만 판매할 수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소화기는 뿌연 가루가 들어있는 분말 소화기지만 EGS의 액상 소화기에는 미황색 투명한 액체가 들어간다. 분말 소화기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할 경우 밀가루 같은 미세 분말로 인해 시야가 가려질 위험이 있다. 지창숙 EGS 전무이사는 “분말형 소화기는 뿌연 분말 때문에 비상구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분말이 호흡기에 들어가 질식 위험도 있다”며 “반면 액상형 소화기는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ABC 액상 소화기는 배터리 화재에도 효과가 있다. 기본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가 발생하면 리튬 소재에서 자체적으로 열과 산소를 방출하기 때문에 산소 공급을 차단해 불을 끄는 ‘질식 소화’가 효과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열을 낮추는 ‘냉각 소화’까지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ABC 액상 소화기는 질식 소화와 냉각 소화가 모두 가능하다.
이 대표는 “ABC 액상 소화기 자체 시험 결과 배터리 화재 진압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2021년 3월 배터리 셀 6개 크기인 약 1200W(와트) 규모의 배터리 화재 진압 시험을 진행한 결과 해당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 국가공인기관에서 인증 성적서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이어 발생했던 전기차 화재도 ABC 액상 소화기가 있었다면 초동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EGS 측 설명이다.
EGS는 형식승인을 받기 전의 ABC 액상 소화기를 현재 ‘배터리 화재용 소화장치’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약 40초간 분사할 수 있는 2.5ℓ 크기의 배터리 화재용 소화장치는 60만원대에, 약 5분간 분사가 가능한 20ℓ 크기는 400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분사 시간이 너무 짧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소화기는 화재의 초동 대응을 위한 장비”라며 “불을 완전히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화재 발생 초기 소방관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버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GS는 공장 부지에서 직접 화재 실험을 진행하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공장 안팎에는 나무 각목, 석유가 들어있는 통, 전기차 배터리팩 등 다양한 실험 자재가 비치돼 있었다. EGS의 테스트 영상을 확인해보니 길이 73㎝의 나무 각목 90개를 쌓아 불을 붙인 뒤 3분간 방치해 불길이 가장 크게 번진 상태에서 2.5ℓ 액상 소화기를 40초간 분사하자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오고 있다. 대만의 소방방재업체에서 EGS가 개발한 액상형 소화용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EGS는 현재 대만으로 1차 샘플 수출을 완료한 상태다. 이 대표는 “대만 소방방재업체 측에서 ESG 소화용액을 가지고 TSMC와 파나소닉 측에 방재 시스템에 대한 기술 제안을 했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여 수출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대표는 하루 평균 3~4번, 많게는 하루 다섯번의 미팅을 소화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로 관공서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있는 곳, 전기차 충전소를 돌아다니며 제품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등 굵직한 사건사고가 많았던 만큼 현장에서는 배터리 화재용 소화장치와 ABC 액상 소화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이 대표가 제품 홍보와 함께 빠짐없이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소화기의 위치다. 그는 “현장을 가보면 미관상 이유로 소화기를 ESS나 전기차 충전기 바로 옆에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막상 화재가 발생하면 접근이 어려워 소화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며 “소방법상 소화기는 소화기가 필요한 구역 20m 내에 잘 보이는 위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성=글·사진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